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는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성령 안에서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고,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이 환영받으며, 마침내 모든 눈물과 고통이 씻겨지는 곳입니다. 이 고백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각자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온 세상 속에서 '작은 예수'가 되어 이 거룩한 나라를 일구어갈 책임이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바로 그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세상의 중심에 두시고,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여호와의 율법을 수호하며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특별히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나 참담하게도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규례를 반역하고 소돔과 같은 죄악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보다 더 교만하게 악을 행했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정해둔 최소한의 선과 윤리 기준조차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날카로운 칼을 들어 머리털과 수염을 깎게 하십니다. 제사장이자 거룩하게 구별된 자의 상징인 털을 깎는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거룩함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극도의 수치와 맹렬한 심판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표징이었습니다. 깎인 털의 3분의 1은 전염병과 기근으로 불타고, 3분의 1은 칼에 멸망하며, 나머지는 바람에 흩어져 칼날에 쫓기게 되는 전무후무한 심판이 예고되었습니다.
오늘날 에스겔을 통한 이 매서운 책망은 곧 지금의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두려운 경고입니다. 우리는 입술로 구원을 확신하며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어떠합니까? 교회와 성도를 통해 세상에 공의와 평화가 스며들고 고통이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불신자들보다 못한 윤리 수준으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소외된 사람을 환영하기보다 화려하고 부유한 이들을 더욱 섬기고, 우리의 이기심과 고집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 분열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면, 우리는 에스겔 시대의 타락한 예루살렘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타고 베이고 흩어지는 이 무서운 진노와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라”고 명하십니다. 이 아주 작은 남은 자들의 비유 속에서 우리는 참혹한 멸망 속에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구원과 회복의 여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보다 악해진 우리의 민낯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님의 옷자락에 싸매어지는 긍휼을 구하며, 잃어버린 거룩함을 회복하고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성화의 길로 돌이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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