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로 역설적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이야기가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찾아오셔서 탄식과 애가, 그리고 재앙이 빼곡히 적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파괴와 멸망이 담긴 쓴 메시지였지만, 놀랍게도 그 두루마리는 에스겔의 입에서 꿀처럼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 달콤함은 입안에서 가볍게 녹아 없어지는 사탕의 단맛과는 달랐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으나 이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품게 되어 고독해져야만 하는 '무거운 순종'을 의미했습니다.
반역의 땅, '델아빕'에 던져진 선지자
말씀을 삼킨 에스겔에게 주어진 사명은 참담했습니다. 그가 가야 할 곳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영적인 둔감함이 결코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말씀을 밀어내는 '고의적인 거부'이자 반역이라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백성들을 대적할 수 있도록 에스겔의 이마를 화석보다 단단한 금강석처럼 굳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영이 그를 이끌어 포로들이 모여 사는 바벨론의 '델아빕'으로 옮기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소명을 받은 직후였지만, 에스겔은 강퍅한 현실의 벽 앞에서 두려움과 어리둥절함에 빠져 7일 동안이나 얼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현대의 '델아빕', 우리는 우상에서 자유로운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역시 과거 바벨론의 그발 강가, 델아빕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념, 권력, 돈, 인기라는 '현대의 우상'을 더 사랑하고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의 진리보다 대중의 신뢰를 받는 지도자의 말을 맹신하거나, 교회를 이용해 출세와 명예를 얻으려는 이들에게 열광하기도 합니다. 자녀, 건강, 재정, 인간관계 등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의 약점을 파고드는 거짓된 메시지에 속아 넘어갈 때, 우리는 영적인 포로 상태인 우상숭배의 멸망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우리의 결단: 회개하는 백성이자, 부르심을 입은 선지자로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성경을 펴며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하는 '백성'인 동시에,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할 '선지자'입니다.
겸손한 회개와 우상 타파 (백성으로서의 결단) 가장 먼저 우리는 겸손하고 정직하게 말씀을 마주하는 백성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권력과 돈, 인기라는 우상을 끊어내고, 복음보다 세상을 더 신뢰했던 무지함을 뼈저리게 회개해야 합니다. 영적인 둔감함은 결국 고의적인 반역임을 기억하고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거운 순종과 사명 감당 (선지자로서의 결단) 동시에 우리는 이 시대의 에스겔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먹되, 그 뒤에 따르는 '무거운 순종'을 기꺼이 감당하기로 결단합시다. 세상이 굳은 마음으로 진리를 거부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마를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하시고 주의 영으로 강하게 붙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포로 된 현실, 현대의 '델아빕'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얼빠진 채로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 안의 우상을 깨뜨리고, 금강석처럼 단단한 이마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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