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자신의 잘못에 한없이 관대해지고, 다가올 미래를 근거 없이 낙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지른 후에도 스스로를 최대한 합리화하며, 어떻게든 적은 대가만 치르고 상황을 무마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론 이런 우리의 안일함을 깨우고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가장 강력하고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에스겔의 충격적인 퍼포먼스가 말하는 것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단순한 말로 전하기 어려운 시급하고 강력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종종 '상징 행동'을 활용했습니다. 끝내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충격을 주는 세 가지 기이한 퍼포먼스를 명령하십니다.
첫째, 에스겔은 토판(진흙 벽돌)에 예루살렘 성을 그리고 그 주위에 철판을 세워, 철저히 포위된 성읍의 비참한 처지와 멸망을 묘사했습니다. 둘째, 그는 밧줄에 묶여 몸을 돌리지도 못한 채 왼쪽으로 390일, 오른쪽으로 40일을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이는 남북이 분열된 통일왕국 시대부터 멸망까지 이스라엘이 지은 죄와 유다의 죄를 담당하는 형벌의 기간을 상징했습니다. 셋째, 온갖 잡곡을 긁어모아 만든 떡을 쇠똥 불(원래는 인분이었으나 에스겔의 간청으로 바뀜)에 구워 먹으며, 멸망 후 백성들이 겪게 될 극심한 기근과 부정한 삶을 낱낱이 예언했습니다.
달콤한 위로에 취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
하나님께서 이토록 끔찍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멸망을 경고하신 이유는, 당시 유다 백성들이 심각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전 605년과 597년, 두 번이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짓밟히고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참상을 겪고도 곧 상황이 회복될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이들의 맹신은 크게 세 가지 영적 무감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첫째,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여호와의 성전이 있으니 예루살렘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 둘째, 고통스러운 회개를 촉구하는 예레미야의 진실보다는, 2년 안에 포로 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위로를 선택했습니다.
- 셋째, 국가적 재난을 하나님의 심판이 아닌 운이 나쁜 정치적 사건으로 치부하며, 부패한 삶을 살면서도 형식적인 제사 행위만으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영적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성전이라는 '장소'에 집착하며 회개 없는 구원만을 바랐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비추는 거울
결국 그들이 굳게 믿었던 성전과 도성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하나님은 장소에 갇힌 분이 아님을 증명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은 멸망하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포로들이 끌려가 있던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임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날카롭게 비춥니다. 우리 역시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듣고 싶은 것과 믿고 싶은 것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기보다, 신앙을 정치적 진영으로 나누거나 재정의 축복,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 열심으로만 증명하려 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도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진정한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죄를 깊이 알고, 아파하며, 돌이키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덮어두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시대의 죄악과 아픔을 몸소 짊어지고 고난의 길을 걸었던 에스겔처럼, 우리도 가정과 나라를 위해 지혜롭게 판단하고 간구하는 영적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영적 교만을 경계하고, 삶의 실질적인 변화가 동반된 고통스러운 회개를 기꺼이 감내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회복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예배자료 > 저서 &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거짓된 평화의 시대에 오신 진정한 평화의 왕 (0) | 2026.03.28 |
|---|---|
| 세상보다 악해진 예루살렘, 그리고 남겨진 희망의 옷자락 (0) | 2026.03.21 |
| [에스겔 04] 결과의 두려움을 넘어 순종의 자리로: 일상에 임한 파수꾼의 부르심 (1) | 2026.03.08 |
| 달콤한 두루마리와 무거운 순종: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0) | 2026.02.28 |
| 절망의 한가운데서 찾아온 소명, 에스겔이 전하는 위로 (0) | 2026.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