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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한가운데서 찾아온 소명, 에스겔이 전하는 위로

by 우목수 2026. 2. 21.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조금 다릅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철저히 패자들의 기록입니다. 당대의 권력과 다투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인간의 승전보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고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무용담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붙잡았던 이들의 생생한 역사인 것입니다.

 

절망의 땅, 바벨론에서 만난 하나님

 

에스겔 선지자가 부름을 받은 무대는 예루살렘이 아닌, 포로로 끌려간 이방 땅 바벨론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은 슬픔과 무기력, 그리고 짙은 분노로 가득 찬 '시한폭탄' 같은 상태였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신이 특정 지역의 신전에만 머문다고 믿었고, 국가 간의 전쟁은 곧 신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다는 것은 자신들의 신인 여호와가 바벨론의 신보다 약해서 패배했음을 의미하는, 뼈아픈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크고 화려한 바벨론 도성 앞에서 유대인들은 깊은 원망과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 가장 절망적인 바벨론 땅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특정 시간과 공간, 혹은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하나님은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며, 오랜 시간 여호와를 배신해 온 '패역한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그를 보내십니다. 변화의 가능성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마치 가시와 찔레, 그리고 맹독을 품은 전갈 가운데 사는 것 같은 끔찍한 공포였습니다.

게다가 에스겔이 전해야 할 메시지는 희망찬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에는 애가와 애곡, 재앙의 말, 즉 슬픈 '장송곡'이 적혀 있었습니다. 존경받는 제사장의 삶 대신, 멸망한 동족들에게 오히려 분노를 살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에스겔에게 단호하게 당부하십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굳이 심판의 말씀을 전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너희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포로 된 그들의 비참한 현실 속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값싼 위로를 먼저 건네지 않으셨습니다. 에스겔서가 심판의 경고로 시작하여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된 이후에야 위로와 회복으로 메시지가 전환되는 것처럼,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는 '회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가기 전 물로 씻고 피를 뿌리는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듯, 죄와의 철저한 단절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곧 죽음이자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관념적이고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으로 오해하여, 일상에서 그분의 존재를 잊고 살아갑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회개부터 말하는 것은 분노를 살 수 있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을 통해 주시는 분명한 일성은, 지금 여기, 우리의 팍팍한 삶 한가운데에 실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소명

 

오늘날의 세상도 에스겔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자의 이익과 상황에 맞춰 모든 것을 재단하며 공의를 저버리고, 서로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들 가운데 에스겔을 부르셨듯, 이 혼란한 세상 속에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며 죄와 단절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우리의 말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는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척박하고 패배자의 기록처럼 보일지라도, 절망의 한가운데서 찾아오신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