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한복판, 그곳에도 하나님의 시간은 흐른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델아빕에 머물며 정신을 잃은 채 7일을 보냈던 에스겔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셨다. 이스라엘이 멸망해버린 암담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파수꾼을 뜻하는 히브리어 ‘초페(צֹפֶה)’는 본래 날카로운 눈으로 대상을 감찰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사정기관처럼 날선 감각으로 무장한 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대신하여 세상을 깨우치는 것이 바로 초페로 부름받은 에스겔의 임무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파수꾼에게 요구하시는 책임의 무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죽음을 선고하셨음에도 파수꾼이 그 말씀을 전하지 않아 악인이 회개할 기회를 잃고 죽는다면, 하나님은 그 죽음에 대한 형사적이고 영적인 책임, 즉 '피 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겠다고 하신다. 죄를 지은 것은 악인인데 어째서 그 피 값을 전하지 않은 자에게 물으시는 것일까? 에스겔의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엄중한 말씀 이면에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마음이 숨어 있다. 하나님은 눈앞에 보이는 '결과'로 우리를 증명하려 하지 않으시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종의 과정'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신다. 만약 파수꾼이 하나님의 뜻을 전했음에도 악인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악인은 자신의 죄로 죽겠지만, 말씀을 전한 파수꾼은 책임이 없으므로 생명을 보존하게 된다. 반대로 옳은 길을 걷던 의인이 악한 길로 돌아설 때 그를 깨우치지 않으면 파수꾼에게 피 값을 물으시지만, 말씀을 전하여 그가 범죄하지 않고 돌아온다면 모두가 살게 되는 완벽한 해피엔딩에 이르게 된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과를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전하라’는 단순하고도 무거운 순종인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에스겔처럼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삶 역시 망해가는 나라에 끌려온 포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치열하고 숨 막히는 정글 같은 현실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꿀처럼 달고 큰 위로를 얻지만, 막상 그 말씀을 들고 순종의 걸음을 내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순종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고 싶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을 들로 이끄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신다. 환상 속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찬란한 여호와의 영광이, 에스겔이 발 딛고 서 있는 평범한 동네 마당에도 동일하게 임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영험하고 신비로운 환상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땀 흘리며 살아가는 정글 같은 일상의 한복판에도 함께하신다.
그렇다면 이제 그 영광에 힘입어 밖으로 나아가 담대히 외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밧줄로 몸을 묶으라 명하신다. 심지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신다. 임무를 주셨으면서 왜 그를 가두고 침묵하게 하시는 걸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배신하고 돌이키지 않는 패역한 족속이었기 때문이다. 전하든 전하지 않든 그들은 거절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덧붙여 약속하신다.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듣고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집에 숨어서 침묵할 때나, 세상으로 나아가 힘차게 말씀을 전할 때나 세상의 반응이라는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늘 결과가 나쁠까 봐 두려워하며 순종을 망설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악인이 회개하지 않아서 우리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짊어질 몫은 결과가 아니다. 순종한 후에는 그 결과가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정하신다. 이것이 순종하는 자가 누리는 진정한 생명이다.
당신의 현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집에서 만나는 가족, 직장의 동료, 학교의 학우, 주위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 평범한 일상이 바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해야 할 파수꾼의 자리다. 마당에 서 있던 에스겔에게 보이셨던 여호와의 영광이 오늘 당신의 삶에도 함께하신다. 그러니 세상의 반응이라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세상 속에서 담대해지자. 결과가 아닌 순종으로 빚어가는 생명의 삶, 그것이 오늘 일상이라는 바벨론을 살아가는 파수꾼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광스러운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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