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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한 사랑, 그리고 현실의 잔소리: 빌립보서를 읽으며

by 우목수 2026. 2. 8.

1.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잔소리'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성경을 읽다 보면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나의 기쁨이자 면류관"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부모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를 바라보며 "내 아들, 내 딸아. 너는 나의 가장 큰 자랑이란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듯, 사랑이 넘치는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늘 낭만적이고 몽글몽글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고백 뒤에는 곧바로 현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너 숙제는 했니?", "게임 좀 그만해라", "동생이랑 그만 좀 싸워." 사랑하기 때문에 현실의 '잔소리'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바울의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성도들을 향해 미소 짓다가 곧바로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꺼내 듭니다. 바로 '갈등'입니다.
 

2. 은혜가 머무는 곳에 필요한 것: 한마음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며 제발 싸우지 말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왜 이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을까요? 그만큼 교회 공동체와 가정에서 구성원 간의 갈등이 가장 치명적인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고 시스템이 좋아도, 혹은 가정이 겉으로 보기에 번듯해도, 그 안에 미움과 다툼이 있다면 은혜는 물 건너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과 교회에 창조 질서에 걸맞은 사랑과 존중이 없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이 좋다는 명목으로, 혹은 교회를 위한다는 열심으로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도의 마음은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그리고 성도가 성도에게 서로 순종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3. 진짜 실력은 교회 밖에서 증명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관용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에이케스(epieikes)'는 너그러움, 다투지 않음, 이성적임, 긍휼 등을 의미하는 아주 멋진 단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너그러움을 우리끼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모든 사람이 알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 사람은 참 착하고 이성적이고 따뜻해. 알고 보니 크리스천이래." 이런 평가를 받아야 진짜입니다. 교회에서는 천사 같은데 직장에서는 최악의 동료로 평가받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너그러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시간적으로 곧 다시 오실 것이며, 공간적으로 지금 내 바로 옆에 계십니다. 내 곁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믿기에 우리는 염려 대신 기쁨과 관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4. 아합의 길에서 벗어나 자족하는 삶으로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종종 다릅니다. 우리는 주님도 믿지만, 세상의 풍요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아합 왕처럼 말입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부국강병을 이끈 유능한 왕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풍요의 신 바알을 동시에 섬기려 했습니다. 전쟁할 때는 여호와를 찾고, 돈을 벌 때는 바알을 찾는 식이지요.
 
오늘날 우리도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찾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돈과 성공이라는 우상 앞에 무릎 꿇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 우리에게 진정한 능력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 고백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주문이 아닙니다. 풍부할 때나 비천할 때나,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팍팍한 현실 속에 있더라도, 내 곁에 계신 주님을 신뢰함으로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성도의 기쁨이자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