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근예배자료/저서 & 글모음

우리는 무엇을 쫓아 달리고 있는가: 바울의 '배설물'과 '푯대'

by 우목수 2026. 1. 24.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은 때로 반복적인 당부로 나타나곤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가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을 변함없이 후원해 준 그들에게, 바울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안전장치'가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부의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하지만 그 기쁨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 시대나 지금이나,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는 존재들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개'들을 조심하고, '못된 일꾼'들을 경계하라고 아주 강력하고 선정적인 언어로 경고합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 개는 부정한 존재이자 성적으로 타락한 이들을 상징했습니다. 바울이 지목한 이들은 신실한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며 구원의 기쁨을 빼앗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정체는 육체의 흔적, 즉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종교적 형식이나 육체적 조건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복음의 본질 대신 학벌, 사회적 배경, 혹은 특정한 종교적 체험이나 형식을 구원의 증거로 삼으려는 태도와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신앙의 중심이 될 때, 순수한 복음이 주는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선명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말하듯,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 또 하나의 충격적인 단어를 꺼냅니다. 바로 '배설물'입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앞서 언급한 '개'와 이 '배설물'을 연결 짓습니다. 개들이나 좋아할 법한 것, 즉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의 조건들을 바울은 배설물, 곧 똥으로 여겼습니다.

 

 

사실 바울은 누구보다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베냐민 지파이자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으며,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 그리고 당시 '개'라고 불린 거짓 교사들이 소망하고 추구하던 모든 조건을 그는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에, 그 모든 화려한 이력을 미련 없이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여전히 배설물의 신앙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스펙이나 자신의 의로움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복음보다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을 앞세우고, 사랑 대신 미움과 증오를 키우고 있다면, 우리는 바울이 경계했던 그 '악한 일꾼'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미 버린 '뒤에 있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배설물로 여긴 것들을 다시 주워 담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 '푯대'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지나간 자랑이나 실패, 혹은 세상이 강요하는 헛된 조건들에 얽매여 곁눈질할 시간이 없습니다. 구원의 완성을 향해,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것이 진짜 기쁨을 누리는 성도의 삶일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입니까? 푯대를 향해 달리기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할 '배설물'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