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근예배자료/저서 & 글모음

우리가 원한 '디모데', 하나님이 보내신 '에바브로디도'

by 우목수 2026. 1. 18.

 
결과가 과정을 증명할 수 있을까?
예전에 전역한 특수부대원들이 나와 전투력을 겨루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한 부대가 "결과로서 과정을 증명한다"는 구호를 외치더군요. 참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에게는 맞을지 몰라도, 우리의 삶, 특히 신앙인의 삶에는 위험한 생각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무시되어도 될까요? 역사는 결과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때 전체주의나 군국주의 같은 괴물이 탄생함을 보여줍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가미가제처럼 젊은이들이 결과라는 명분 아래 희생을 강요당했던 것처럼 말이죠. 교회와 성도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결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 미움이나 음모, 폭력이 섞일 수는 없습니다. 거짓된 수단으로 참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대했던 '능력자' 대신 돌아온 '병자'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며 두 사람,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언급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 부를 정도로 신뢰하는 제자였습니다. 바울의 분신처럼 사역했고, 문제가 생긴 교회에 해결사로 파견될 만큼 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내심 바울이 직접 오지 못한다면, 적어도 '디모데급' 인물이 와서 자신들을 위로해주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도 많이 보냈으니 그 정도 대우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뜻밖의 소식을 전합니다. 디모데는 나중에 보내고, 우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원래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옥바라지를 위해 파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울을 돕기는커녕 덜컥 병이 들어 죽을 고비까지 넘겼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그는 임무에 실패하고 오히려 바울에게 짐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 입장에서 보면 "옥바라지 좀 잘하라고 보냈더니, 자기가 드러누워 짐만 되고 돌아온 셈"이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에바브로디도 본인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교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돌아가서 받을 눈총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다른 하나님의 응답
하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에바브로디도를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하게 여겨달라고 부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용납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방식과도 닮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처럼 국방력을 강화하고 경제를 살려줄 강력한 '권력형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헤롯처럼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결과를 가져다줄 초인을 원했지요.
하지만 정작 오신 예수님은 너무나 볼품없고 허약해 보였습니다. 강력한 무력 대신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디모데(성공과 능력)'가 아니라 '에바브로디도(고난과 십자가)'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렸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도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 즉 '디모데'를 꿈꿉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각자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렸던 것처럼, 우리도 현실의 벽 앞에서 신앙의 본질을 잊곤 합니다.
우리는 금으로 된 천국의 결과만을 바라보지만, 성경은 자꾸만 그곳으로 가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내가 원하는 조건(디모데)이 아닌, 내가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바브로디도)이 닥쳐올 때,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과정을 어떻게 사랑과 믿음으로 통과하는지 지켜보십니다.
전승에 따르면, 실패자로 낙인찍힐 뻔했던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따뜻한 용납 속에 훗날 그 교회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긴장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화려한 결과나 성공보다, 때로는 병들고 부족해 보이는 형제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가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화려한 디모데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보내신 에바브로디도를 품을 준비가 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