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근예배자료/저서 & 글모음

죽으면 죽으리이다: 과거의 실패를 넘어 생명의 날로

by 우목수 2026. 1. 3.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지난 시간의 기억은 어떤 모습입니까?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감사의 감정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과 괴로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멋지고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작년’ 혹은 ‘과거’라고 부르는 시간과 기억에 매여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새로운 시작을 원하지만, 상황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연속적인 오늘. 우리는 언제쯤 진정으로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낯선 땅,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성경 속 에스더의 시대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 살던 유대인들은 비록 법적으로는 제국의 신민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패배한 나라의 포로’이자 ‘이상한 문화를 가진 소수민족’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들은 주류 사회의 껄끄러운 시선 속에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되면서 자신의 민족을 숨겨야 했던 이유도, 밝혀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차가운 현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적으로 잘 스며들어 생존해야 하면서도, 때로는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구별되어야 하는 이중적인 어려움 속에 놓여 있습니다.
 

타협할 수 없는 믿음의 유산

그러던 중 유대 민족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칩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던 권력자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무릎 꿇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미 나라는 망했고 이방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목숨을 걸고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모르드개의 거절은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만은 이스라엘의 오랜 숙적 아말렉 왕의 후손이었고, 모르드개는 사울 왕가의 후손이었습니다. 과거 사울 왕이 완수하지 못했던 ‘아말렉 진멸’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모르드개는 지금 이방 땅에서라도 믿음으로 계승하려 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 결과가 민족 전체의 몰살이라는 무서운 위기로 다가왔을지라도 말입니다.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죽음의 공포 앞에서 왕비 에스더도 처음에는 주저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가면 죽는다는 엄격한 법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뼈아픈 통찰을 던집니다.
 
“네가 왕궁에 있으니 홀로 살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네가 잠잠하면 유대인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얻겠지만, 너와 네 집은 멸망할 것이다. 네가 왕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이때를 위함인 줄 누가 알겠느냐?”
 
이 말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울림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침묵해도 당신의 뜻을 다른 길로 이루십니다. 하지만 그 역사에 동참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손해이자 버림받음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은혜로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삭막한 페르시아의 왕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나의 신분이 거룩한 성민이 아니라 이방의 식민처럼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결국 에스더는 결단합니다. “나를 위해 금식해 주십시오. 나도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가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 비장한 고백은 단순한 객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두려움과 현실의 안락함을 뛰어넘어, 생명을 거는 믿음의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던 장대에는 오히려 하만 자신이 매달렸고, 죽음이 예정되었던 날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는 생명의 날로 바뀌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믿음입니다. 과거 조상 사울은 실패했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믿음의 결단으로 그 실패를 넘어섰습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이 때로는 페르시아의 낯선 땅처럼 느껴질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바로 ‘이때’를 위해 그 자리에 두셨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각오한 용기로 나아갈 때, 과거의 아픔과 실패가 변하여 생명과 기쁨이 되는 반전의 은혜가 여러분의 한 해를 가득 채우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