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생활은 때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것 같습니다. 가장 위대한 고백을 했던 순간 바로 뒤에, 가장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니까요. 오늘은 마태복음 16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걷고 있는 제자의 길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1. 화려한 도시 속 초라한 질문
이야기의 배경은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이곳은 헬라의 신 '판(Pan)'을 숭배하던 곳이자, 로마 황제에게 헌정된 도시였습니다. 온갖 화려한 신전과 황제의 권력이 지배하는 이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세상의 권력과 화려함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는 예수님이 던진 이 질문은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원하시던 완벽한 답을 내놓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황제 숭배가 가득한 도시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이 믿음 위에, 예수님은 천국 열쇠를 약속하시며 교회를 세우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2. "그럴 수 없습니다"라는 본능적 외침
하지만 이 완벽한 고백 직후, 분위기는 급변합니다. 예수님께서 비로소 당신의 사역이 '영광'이 아닌 '고난과 죽음'임을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여기서 '항변하다'로 쓰인 헬라어 '에피티마오(ἐπιτιμάω)'는 단순히 말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고 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3년이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는데, 비참한 죽음이라니요. 그의 이 행동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사랑하는 스승을 지키고 싶은 '본능'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3.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 부르셨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향해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가롯 유다를 제외하고 예수님이 사람에게 '마귀' 혹은 '사탄'이라 칭한 것은 이때가 유일합니다. 최고의 칭찬을 받은 직후에 사탄이라 불리게 된 베드로. 예수님은 왜 이렇게까지 격노하셨을까요? 신학자 브루스 밀른의 해석을 빌려 그 의미를 세 가지로 짚어봅니다.
첫째, 제자의 위치를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뒤로 물러나라"는 말씀은 서열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뒤를 따르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길을 막고, 오히려 예수님을 이끌려 했습니다. 우리 또한 신앙생활 중 내 경험과 현실을 앞세워 예수님보다 앞서나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둘째, 인간적 애정의 위험성입니다. 베드로의 항변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때로 우리가 가진 '착한 마음'과 '인간적인 애정'을 이용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고난받지 않고 꽃길만 걷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칫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길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 '십자가 없는 기독교'에 대한 경계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거부한 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유일한 통로인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고통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4. 2025년을 보내며 던지는 질문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는 2025년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시겠습니까? "성공했는가? 건강했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여전히 내게 있는가? 비록 힘들더라도 내가 예수님보다 앞서지 않고 그분의 뒤를 잘 따랐는가?"
베드로처럼 우리도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꾸중은 우리를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제자의 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이제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다시 예수님의 뒤편에 서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그 길을 따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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