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짜 믿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현실의 그림자
최근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내란과 비리에 연루되어 있거나, 심지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절에서 불상에 예불까지 드린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국가와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는 이들 중 일부가 윤리적 수준에 미달하고 기독교 신앙의 기준으로도 의심스러운 종교 생활을 이어간다면, 과연 우리는 그들의 믿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오늘날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면서까지 지키고 전파해야 했던 '참 복음'과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기를 요청합니다.
2. 감옥에서 온 권면: 복음에 합당한 삶
현재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자신이 살아서 빌립보 성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죽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누리는 가장 좋은 일이지만, 살아남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도들에게는 유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귀 기울여야 할 권면을 남깁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한글성경은 이를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울리는 시민으로 살아가십시오”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으므로, 당연히 지금 복음에 어울리는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이라는 단어는 원래 1세기 로마에서 정치적 선동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에게 복음은 황제의 탄생, 예를 들어 아우구스투스가 전쟁을 끝내고 세상을 평화롭게 할 구원자라는 소식(프리에네 비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황제가 전하는 거짓 복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졌으며, 이 복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참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3. 복음을 오해하는 위험: 값싼 은혜의 우상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복음을 오해합니다. 복음을 오해하는 가장 큰 실수는 복음을 핑계 삼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리스도, 복음, 구원 그 자체보다 교회에 속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총량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인맥을 형성하는 통로로, 민원을 해결하는 창구로, 혹은 이익 극대화를 위한 세력으로 활용하고 싶어 합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게 힘, 권력, 재물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 할 수 없고, 그저 교회를 빙자한 세상 모임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한편, 한동안 교회는 ‘값싼 은혜의 우상’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많은 교인과 목회자들이 "구원에 우리의 공로는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교리에 숨어서, 전혀 경건하지도, 선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죄와 가깝고 복음에 먹칠을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는 천국을 사람들 앞에서 닫아 버리는도다"라고 책망하신 분노를 기억해야 합니다.
4. 참 믿음의 세 단계: 지식, 동의, 신뢰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동의하고, 신뢰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시민다운 삶을 살고자 합니다. 찰스 스펄전은 믿음을 세 단계로 설명했는데,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한 구분일 뿐 실제로는 거의 동시에 작동합니다.
- 지식 (Knowledge): 믿으려면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동의 (Assent):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았다면, 그 진리가 참되다고 인정하고 동의하는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복음의 내용을 사실로 확신하며, 그 진리가 나에게 유효하다고 나의 전 인격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신뢰/적용 (Trust/Application): 이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최종 단계입니다. 알고 동의한 진리를 전적으로 개인의 삶에 적용하고 의지하는 것, 즉 순종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나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단계이며, 이 단계에서 비로소 구원의 믿음이 완성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의 아주 먼 기억 속 뒤편에 유물처럼 처박혀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나도 옛날에는 믿음이 좋았는데"라는 추억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이 여전히 그리스도의 복음 아래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5.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싸움, 구원의 증거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동의하며 신뢰하여 참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에 속해 있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서로 권면하고, 응원하고, 위로하고, 중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일"을 듣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마음’은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영’으로 단결하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이 한 영으로 단결할 때,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으며, 이것이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분명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적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 밖에도 있지만,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으며, 성도들이 복음에서 멀어지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하며 고통까지 감내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곳처럼 목숨을 걸고 신앙을 하는 나라들이 존재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은 목숨을 담보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믿음은 세속 권력에 의해 직접적으로 방해받지 않지만, 여전히 세상의 도전과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희의 믿음이 진짜니?"라고 도전하고 의심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난받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매 맞고 갇히며 복음을 전하는 싸움과 여러분이 싸우고 있는 싸움이 똑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실제로 갇히거나 매를 맞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복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는 고난을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고난을 감당하는 것이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일"은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구원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살고자 할 때 오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 때, 그 모습이 곧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세상에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최근예배자료 > 저서 &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탄주일] 화려함 뒤에 숨겨진 진짜 성탄의 얼굴: 우리가 기다리는 구원자는 누구인가 (0) | 2025.12.21 |
|---|---|
| 예수 믿으니 정말 좋으신가요?: '나'를 넘어 '우리'가 되는 길 (1) | 2025.12.13 |
| 복음의 고귀함과 삶의 유익: 왜 바울은 감옥에서도 감사했을까? (1) | 2025.11.30 |
|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비결: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시는 하나님’ (1) | 2025.11.22 |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 무장하라 (0) | 2025.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