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와 마찬가지로, 고대 에베소 사회 역시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웠던 곳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베소서 5:22-33)에서 제시하는 가정에 대한 교훈은, 당시의 모든 문화적 유형을 거부하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라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 글은 때로는 불편하게 들리는 '복종'과 달콤하게 느껴지는 '은혜'라는 개념을 고대 에베소의 복잡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살펴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가정 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해봅니다.
1. 불편한 단어, ‘복종’과 기대되는 단어, ‘은혜’
우리가 성경 본문(엡 5:22-33)을 접할 때, 제목은 ‘순종’이라고 쓰여 있을지라도 실제 성경에는 ‘복종’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복종’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굴욕적이며 부적절한 상태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결코 사랑스럽거나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반면 ‘은혜’는 공짜로 무언가를 얻어 이익이 되는 듯한 좋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는다는 것 역시 나보다 지위가 높거나 권력 있는 사람이 베풀어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기분 좋은 것을 베풀어줄 때만 좋은 느낌으로 남습니다.
바울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권면은 오늘날뿐만 아니라 당시에도 매우 불쾌하게 들렸을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흔히 추정되던 것과는 달리 에베소 당시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에베소의 역동적인 사회: 과장된 억압과 ‘신여성’의 등장
우리는 흔히 고대 여성들이 억압받는 끔찍한 삶을 살았다고 추정하며, 헬라나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남성 우월적 태도가 성경 본문을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에는 과장된 부분이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항구도시였던 에베소는 매우 부유한 도시였고, 로마의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남편이 가장권을 가지고 아내, 자녀, 종에 대한 모든 법적, 사회적 권리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에베소서가 쓰였던 주전 1세기 중반부터 로마에서는 ‘로마식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성들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독립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자기주장을 통해 도덕적 관습을 깨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로마의 역사가 마이클 그랜트는 후기 공화국의 로마 여성들이 “현시대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에베소를 포함한 서부 소아시아 도시의 여성들은 도시의 주요 요직에 진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세기부터 3세기까지 이 지역의 8개 도시에서 최고행정관(시장직)을 맡았던 여성이 28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시장직 외에도 여러 직책을 맡았고, 심지어 운동 경기와 시합을 주관한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3. 여신 숭배와 성 정체성의 혼란
서부 소아시아 지역에서 여성들이 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지역에 특별히 많았던 여신 숭배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여신 숭배에서 여성들은 중요한 지도자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에베소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아데미’였지만, ‘위대한 어머니’로 불리는 ‘키벨레’ 여신 숭배 역시 사회질서와 남녀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키벨레 여신을 섬기던 남자 종들은 스스로 거세하여 남성을 포기하고 여성 복장을 하거나 여성과 같은 태도를 보여 인위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에 대한 인식이 고전적인 가부장적 생각부터 새로운 모습의 신여성까지 다양했고, 성 정체성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까지 일어났습니다. 어떤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부인하고 여성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여신을 섬기고, 남자와 여자 둘 다와 연애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역할이 역동적으로 변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에베소 지역의 교회는 도시 엘리트, 귀족부터 농부, 종에 이르기까지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어떤 가정은 절대적인 가부장적 전통을 따랐을 것이고, 어떤 가정은 신 로마 여성의 생활 방식을 따랐을 것이며, 심지어 여신 숭배를 주관하던 여사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4. 바울의 메시지: 모든 문화적 유형의 거부
이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바울은 에베소와 서부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남편과 아내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성경적이고 기독론적으로 제시합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은 당시 사회에서 유행하던 모든 문화적 유형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 가부장적 문화가 주를 이루는 가정에서는 아내들이 맹목적으로 순종하거나 불만을 품고 살았을 수 있습니다.
• 신여성의 문화가 주를 이루는 가정에서는 남편들이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 남편은 가부장의 전통을 지키려 하고, 아내는 신여성의 문화를 누리고 싶어 싸우는 일이 매우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바울은 아내들에게 복종을 권면하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핵심을 제시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결국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종’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5. 남편에게 요구되는 무조건적 희생과 사랑
바울은 아내들에게 복종을 권면하는 것과 더불어, 남편들에게도 동일하게 권면합니다. 남편의 의무는 복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의 아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처럼, 자발적인 사랑에 근거한 희생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를 세우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지켜야 합니다.
이 사랑은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6. 오늘날의 가정: 사랑과 복종의 재정립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당시 에베소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 문화가 남아있고, 동시에 신여성의 문화가 남성과 여성을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최근에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세대를 갈라치고, 남성과 여성을 서로 대적하고 증오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혐오하는 것이 만연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그렇게 서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사랑 이외에는 어떠한 이유도 목적도 없습니다. 바울의 권면은 문화적 유형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 기독론적인 사랑과 복종의 관계를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가정을 세우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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