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박국의 노래에서 배우는 '조건 없는 기쁨' >
추수감사절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구원과 믿음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조건인 '감사'를 되새기는 매우 중요한 교회 절기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혹은 현실에 감사할 거리가 전혀 없을 때도 굳이 날짜를 정해 감사절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약성경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하박국이 처했던 현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1. 하박국의 시대: 불의와 불안의 백척간두
하박국이 활동하던 시기(주전 609년경~597년경 추정)는 국제 정세가 격변하던 강대국의 권력 교체기였습니다. 아프리카의 강호 이집트는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최강 앗수르가 몰락하고 바벨론이 새롭게 급부상하여 세상의 주인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유다는 이 급변하는 세력 구도 속에서 생존의 줄타기를 하는 백척간두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당시 애굽이 왕을 세웠기에(여호야김) 유다는 애굽에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 했지만, 실질적인 최강자는 바벨론이었으므로 바벨론도 동시에 섬겨야 했습니다. 이 모든 조공의 짐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여호야김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조공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며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왕하23:35).
더욱 심각했던 것은 유다 내부의 부패였습니다. 지도층과 부자들은 폭력과 불법을 저지르며 재산을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며 재앙을 피하려 높은 곳에 깃들이려 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2:6, 2:9).
이처럼 불의하고 불안한 사회 상황을 겪으면서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가 자기 백성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무력한 신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신앙 회복보다 정치적 생존을 중요하게 여겼고, 여호와를 신뢰하기보다는 바벨론의 문화와 신비주의적 제사, 점술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 고통 속의 절규: 감사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하박국은 이러한 현실을 목격하며 하나님께 끊임없이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왜 자신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시는지, 눈앞에서 악이 행해지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왜 잠잠히 계시는지 분노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2).
율법과 정의는 전혀 행해지지 못하고, 악인이 의인을 포위하여 정의가 무력하게 망가졌다고 한탄했습니다 (1:4). 눈이 정결하여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주께서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왜 침묵하시냐고 절규했습니다 (1:13).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온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공하는 세상이 되었으며, 분단국가인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매우 불안함을 느낍니다. 경제 대국이라 자부하지만,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굶주림과 죽음이 여전하고,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모든 것을 삼키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까지 불의에 일조하며, 하나님의 공의보다 자신들의 권력이나 배불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정직하게 살려는 성도들의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취하고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은 해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건강조차 위협받으며 병마와 싸워야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과연 감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겠습니까?
3. 환난 날을 기다리는 떨림 속의 노래
하박국은 분노와 불만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위대한 찬양으로 마감됩니다.
하박국은 다가올 환난 날을 기다리며 몸이 떨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온 듯한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3:16). 그는 목사 노릇을 하는 이 시대의 목회자처럼, 생존에 대한 두려움(건강, 자녀, 재정, 관계) 속에서 현재를 살며 환난을 만나는 것 외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절망의 순간에 하박국은 위대한 결단을 선언합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조건이 사라지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7).
이는 수입이 줄어들고, 모아 놓은 재산들이 병원비, 양육비 등으로 점점 사라져 외양간이 텅텅 비어버린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 상황은 결코 감사에 맞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은 노래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8).
4. 감사의 재정의: 믿음의 시선, 조건의 초월
하박국이 절망적인 조건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3:19).
하박국의 감사는 세상의 조건을 뛰어넘는 믿음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보통 승진, 합격, 연봉 상승 등 원하는 조건이 충족될 때만 감사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기대와 다를 때, 해고나 사업 실패, 건강의 무너짐을 겪을 때는 전혀 감사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감사의 조건화는 결국 믿음의 조건화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내가 정한 수준에 하나님께서 도달해야 나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또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의 결과가 아닙니다. 참 감사는 누가 나와 함께 하시는가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공로가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지금도 성령을 통해 보증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기반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응답을 얻은 것에 대한 하나님께 드리는 보상(대가)이 아닙니다. 감사는 믿음의 열매이며, 결단이자 선언입니다. 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낙관적 사고가 아니라,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는 현실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지금도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 믿음의 열매가 바로 진정한 감사가 될 것입니다.

비유를 통한 이해:
조건화된 감사는 마치 자판기에서 원하는 음료수가 나왔을 때만 돈을 넣는 행위와 같습니다. 원하는 보상이 없으면 자판기를 신뢰하지 않거나 이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하박국의 감사는 마치 어두운 산길에서 오직 믿음직한 안내자의 손만 잡고 걷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이 칠흑같이 어둡고(수확물의 부재), 발밑이 불안하며(환난의 두려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안내자(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어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여 높은 곳으로 인도할 것을 신뢰하는 선언입니다. 감사는 이 안내자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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