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세상에서 지녔던 권위를 잃고,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충성도를 더 이상 받지 못한다면, 교회는 결국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 없는 사교 클럽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는 흑인 인권운동 중 버밍엄 감옥에 수감되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편지에서 발췌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196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앨라배마 버밍햄에서, 킹 목사는 평화 시위를 이끌다 체포되었고, 심지어 백인 목회자들은 그에게 "무책임한 행동을 멈추라"며 비판 성명을 게재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킹 목사가 너무 극단적이며 점진적인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킹 목사는 이에 대해 "기다리기만 한다면 결코 ‘적절한 때’는 오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는 극우 인종주의자보다도 '적당히 동의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온건한 백인'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어설픈 이해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절대적 몰이해보다 때로는 더 힘이 빠지는 요소였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독립운동가나 민주주의에 헌신한 이들이 공의를 위해 감옥에 갇혔듯이, 희생의 영향력은 격리되지 않고 오히려 강한 전파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감옥에서 온 가르침, 곧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역시 강력합니다.
바울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을 계획하셨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이 이루어졌으며, 성령께서 구원을 보증하신다는 믿음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교리 설명 이후 바울이 정말 전하고 싶었던 내용은 에베소서 4장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에베소서에는 앞서 말한 내용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거나 새로운 단락으로 넘어갈 때 사용하는 헬라어 접속사 '오운'(οὖν)과, 원인에 대한 필연적 결과를 강조할 때 사용하는 접속사 '디오'(διό)가 자주 등장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엡 4:25)은 '디오'(διό)로 시작하는 '그런즉'을 사용하여, 구원받아 "새 사람을 입은 성도에게 반드시 뒤따라와야 할 결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몇 가지 필연적 행동들이 있습니다.
첫째, 25절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스가랴 8장 16절을 인용한 것으로,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재건의 시점에서 이웃들과 진리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합니다.
둘째, 26절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은 분노 그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특히 불의한 일에 분노하는 것은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바람직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분노가 일상적인 성격이 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분노 지수가 높아질수록 행복지수는 낮아지며, 부자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자살률이 높은 현실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성도는 해가 지기 전, 잠들기 전에 반드시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분노가 길어진다는 것은 성령이 계셔야 할 마음에 마귀에게 일부를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극적인 변화가 요구됩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나쁜 행동을 멈추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과거 도둑질하던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는 것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구제에 수고를 더해야 합니다. 또한, 더러운 말을 하던 사람은 더 이상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오히려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루터 킹 목사가 언급했던 ‘적당히 동의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온건한 백인’의 모습이 문제가 됩니다.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온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니 더 이상 도둑질은 하지 않지만, 굳이 구제의 수고까지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쁜 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은혜로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다니고 신앙생활도 하지만, 너무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은 이러한 온건하고 어설픈 믿음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전히 도둑질하고 더러운 분노를 품는다면 그는 여전히 마귀와 연관된 삶을 사는 것이므로 성령이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가 어설프게 믿으며 성령의 자리를 빼앗아 마귀에게 양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도둑질은 하지 않지만 구제하는 손의 수고 대신 이웃을 공격하는 손가락질에 수고하고, 더러운 말은 하지 않지만 은혜로운 말은 하지 않으며 적당한 정의를 말하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자리를 마귀에게 내어주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려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신 것처럼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참된 성도의 일상은 단순히 종교생활이나 교리에 적당히 동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불편함을 감수하며 구제하고, 선을 행하며, 은혜를 끼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살 때, 내 안에 염려하지 않는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의 보증과 함께 온 삶의 화평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 ~ 5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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