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와서 말하길,
"이제 당신은 늙었고, 다른 나라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다.
내가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사무엘상 8장 4~9절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 시대는, 눈에 보이는 왕 대신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神政)’의 형태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사들의 리더십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결국 “우리에게도 눈에 보이는 왕을 달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무엘상 8장에 기록된 이 장면은, 백성의 요구에 당황하고 낙담한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무엘 개인을 거부하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버리는 영적 반역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 행위가 우리 시대의 정치나 교회,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는 어떤 의미를 전해 줄 수 있을까요?
1. 역사적 배경과 하나님의 선언
사무엘상 8장은 사무엘의 노년에 벌어진 일들을 생생히 보여 줍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되었으나, 금권과 불의를 일삼아 백성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이에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찾아가 “이제 우리에게 왕을 세워 달라”라고 요청합니다. 언뜻 보면 이스라엘의 요구는 부패한 사사 체제를 혁신하려는 ‘개혁 요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 싶다”라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 개인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근본적으로는 신정을 거부하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고자 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불의하다”는 현실적 문제를 들었으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방식 대신, 이방 국가처럼 눈에 보이는 권력 구조를 선택하고 싶었던 것이죠. 사무엘이 느꼈을 심적 좌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로하시면서도 이스라엘의 ‘영적 반역’을 폭로하시는 장면은, 당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드러냅니다.
2. 신학적 의미: 신정 거부와 세속화
"교회의 역할은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항여 정치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방향을 향하도록 돕는 것"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은 이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보여 준 태도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보다, 눈에 보이는 강력한 왕의 권력을 더 신뢰하려 한 죄’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공의와 질서, 그리고 언약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기보다는, 이방 민족들과 유사한 정치·군사 체제를 갖추어야 안전하고 번영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백성들의 요구 자체가 제도적·정치적 변화를 바라며 시작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도 종종 경험하듯, 제도 개선이나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바뀐 제도나 리더도 결국 인간의 한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정한 해결책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돌아가는 회개’와 ‘참된 언약 관계 회복’이라는 사실이 성경 전반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3. 현대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과의 비교
이러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가 종종 겪는 정치적 흐름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위기나 갈등이 생길 때, 누군가 영웅적으로 나서 모든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과거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눈에 보이는 권력에 전권을 집중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정의와 공평이 보장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로 들어가며 겪었던 갖가지 부작용—세금과 부역, 왕의 독재 등—을 보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 줍니다.
또한,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 싶다”는 이스라엘의 인식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세계적 경제·정치 흐름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이나, 주변 열강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 등이 때로는 중요한 가치들을 간과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가치란 ‘공정’과 ‘정의’ 같은, 민주주의가 기반해야 할 원리들입니다. 문제를 즉시 해결해 줄 왕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건강한 공동체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이야말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길일 것입니다.
4. 오늘날 교회의 모습에 대한 성찰
교회 역시 세속화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교회에 바라는 것은 흔히 “눈에 보이는 부흥”이나 “화려한 예배당”, “카리스마 넘치는 목회자”일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기대는 얼핏 보면 교회의 ‘성장’을 위한 열정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 대신 ‘세상적 성공’을 더 중시하는 태도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신앙적·윤리적으로 타락했을 때,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 타락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제도를 아예 왕정으로 바꿔 버리려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내부 문제(부패, 재정 논란, 지도자 윤리 문제 등)가 불거지면, 근본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나아가기보다, “더 나은 마케팅”이나 “조직 개편” 등 외적인 수단에만 치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스라엘처럼 더 깊은 영적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뿌리인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프로그램이나 제도를 도입해도 결국 한계를 드러내고 말기 때문입니다.
5. 결론: 신정(神政)의 본질을 기억하며
"신정정치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는 정치가 아니라,
그분의 공의와 사랑이 실천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다.” 이 말씀은 사무엘 개인이 받은 거부감 혹은 왕정보다 뒤쳐졌다고 느껴지는 사사제도에 대한 거부라는 형태로 드러난 내면의 더 큰 영적 반역—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버린 태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핵심 교훈은, 인간 제도나 외형적 리더십만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세우고, 하나님의 기준을 공동체 안에 구현해 가는 일입니다.
현대 한국의 정치권이든, 교회든,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든,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순종’이 결여된 상태에서 제도나 시스템만 바꾼들, 결국 우리는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면서 맞닥뜨렸던 역사의 교훈을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해결책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제도와 정책, 리더십을 세워 나가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신정의 본질을 끝까지 붙들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크고 영원한 가치를 쫓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의 회복’과 ‘정의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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