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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의 위험성과 갈멜산의 교훈

by 우목수 2025. 3. 3.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서 “양쪽 다 문제가 있다”며 대립을 회피하거나, “나는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흔히 ‘양비론(兩非論)’이라 부르는데, 자칫 이것이 진리를 분명히 볼 수 있음에도 결단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열왕기상 18장에서 벌어진 갈멜산 대결을 통해 양비론이 왜 위험한지 잘 보여 줍니다.

 

갈멜산 대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을 숭배하는 아합 왕과 이세벨의 영향력, 그리고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여호와 신앙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참된 신인지 분명히 보여 주는 증거가 필요했지만, 백성들은 우유부단하게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겠다”고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선지자 엘리야는 엄중히 책망합니다. 그가 외친 말은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백성들의 심장을 찌르는 질문이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열왕기상 18:21)

 

이 말은 우선 “중립이 과연 있을 수 있느냐”라는 물음입니다. 혹자는 “양쪽 다 문제가 있으니, 나는 둘 다 지지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스스로를 지혜롭거나 객관적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그들이 머뭇거리는 태도는 사실상 명확히 잘못된 바알 숭배에 빠질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백성이 머뭇거리지 않도록 아주 분명한 방법을 제안합니다. 각각 제단을 쌓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임을 증명하자고 말합니다(열왕기상 18:23-24). 그리고 대결이 시작되었을 때, 바알 선지자 450명은 온갖 방식을 동원해 바알이 불을 내리도록 애썼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었습니다. 반면 엘리야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즉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며 그분이 참 하나님이심이 드러납니다(열왕기상 18:38). 그제야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외치며 바알 숭배에서 돌이키게 됩니다(열왕기상 18:39).

 

 

이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에도 ‘양쪽 다 나쁘다’고만 말하며 결정을 회피하거나 중립을 가장한다면, 실제로는 오류나 악을 방치하게 될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계속 머뭇거리기만 했다면, 결국 바알 숭배의 폐해는 계속 번져나갔을 것입니다. 실제로 양비론은 때때로 불의를 두둔하거나, 더 큰 잘못이 자라날 환경을 제공하게 됩니다.

 

또한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특히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점이 성경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됩니다(출애굽기 20:3, 마태복음 6:24). “양비론을 취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 역시 열어두겠다”는 뜻이 되기 쉬우며, 이는 신앙적으로 매우 위험한 태도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제시한 기준은 바로 이 양비론을 깨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네가 진짜 어떤 길을 따를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회색 지대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모든 갈등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한 편을 드는 태도가 옳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분명히 선악(善惡)과 진위를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더 이상 “양쪽 모두 문제 있다”는 말로 결단을 미루거나 책임을 흐려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적인 중립이나 회색 지대를 추구하는 태도는 편리하고 그럴싸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도덕적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핑계가 될 수 있으며, 참된 가치를 수호하는 일에 실패하게 만듭니다.

 

결국 갈멜산 대결은 선과 악, 참과 거짓이 분명히 갈라지는 순간에, 결코 양비론이 답이 될 수 없음을 잘 보여 줍니다. 백성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장면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고 참되신 분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제야 우상을 버리고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디까지나 진리가 명확히 나타났을 때는 용기 있는 결단과 책임감 있는 행동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삶의 현장에서 갈등을 접할 때, 무비판적으로 “양비론”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참된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의 논리에 휩쓸릴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행위는 아닌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엘리야의 책망처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라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불편해도, 책임을 요구해도, 바른 쪽에 설 수 있는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우리를 참된 생명과 자유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