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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기억할 것이다.

by 우목수 2026. 8. 9.

에스겔 16장은 우리를 깊은 성찰로 이끄는 거울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라는 옛 속담을 빌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숨겨진 가계도를 낱낱이 파헤치십니다. 스스로 거룩한 도시라 자부하던 예루살렘의 뿌리가 사실은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에 불과하며, 그 자매는 타락의 대명사인 사마리아와 소돔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고 매일 제사가 드려지는 자신들이 소돔이나 사마리아와는 차원이 다른 '선민'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소돔의 본질적인 죄는 풍족함 속에서 가난하고 무력한 이웃을 외면한 교만함이었고, 사마리아의 악행조차 예루살렘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종교적 형식주의 뒤에 숨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예루살렘은, 자매들보다 더욱 극악한 '최악의 콩가루 집안'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이 서늘한 경고는 오늘날의 교회를 향한 엄중한 질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세상과 스스로를 격리한 채, '구원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독선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착한 행실로 하나님을 나타내야 할 성도가, 도리어 세상의 기본 윤리조차 따라가지 못하며 혐오와 분열을 낳고 있다면 우리는 에스겔이 책망했던 예루살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허상이 드러날 때 세상의 멸시를 받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핏덩이 같던 예루살렘을 거두어 왕후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한 대가는 참혹한 멸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멸망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59절의 뼈아픈 심판 선언 바로 뒤에는 절망을 반전시키는 하나님의 한마디가 찾아옵니다.

 

“베자카르티(וזכרתי) — 그러나 내가 기억할 것이다.”

 

 

인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옛 언약을 기억하사 ‘영원한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은혜는 훗날 골고다 십자가 위에 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마침내 완성됩니다. 유대인이라는 특권도, 우리의 어떤 공로나 노력도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그의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차별 없이 열리는 구원의 길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이 된 증거는 명확합니다. 내 안에 도사린 죄를 스스로 기억하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겸손,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동력 삼아 조금씩 죄와 멀어지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결코 타인을 업신여기기 위한 특권이 아닙니다. 이 거룩한 은혜 앞에서 스스로의 정결함을 과시하는 교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참된 화목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