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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 에벤에셀의 은혜

by 우목수 2026. 7. 12.

 

일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다 보면 문득 마음 한구석이 허허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 노력을 다했음에도 찾아오는 실패의 좌절감은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극심한 영적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시대를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나라를 이끌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거부했던 '영적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기준을 버리고 각자의 이익과 판단만을 좇아 살아가던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영적 타락과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뿐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이스라엘은 당황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기보다,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끌고 오는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언약궤만 가져오면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승리를 주실 것이라 착각한 것입니다. 경외함도, 진정한 회개도 없이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나 '인질'처럼 대했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전쟁에서 대패했을 뿐만 아니라 언약궤마저 적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삶의 끝은 처절한 패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언약궤를 빼앗긴 지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 이스라엘 온 족속은 비로소 하나님을 갈망하며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원어적 의미로 '슬피 울며 통곡했다'는 뜻의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달은 자들의 진정한 애통이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의 선포에 따라 이스라엘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고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물을 부어 드리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자복했습니다. 삶의 주권을 다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진정한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그때, 영적 회복이 일어난 그 자리에 다시금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스라엘이 모였다는 소식에 블레셋이 전면 공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군사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절망적인 순간이었지만, 이제 이스라엘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자신의 편법을 의지하지 않고 사무엘과 함께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기도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을 어지럽히셨고, 이스라엘은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승리 후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사실 이전에도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대패하여 언약궤를 빼앗겼던 장소의 이름 역시 '에벤에셀'이었습니다. 처음의 에벤에셀은 수치와 참패의 장소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 다시 세워진 에벤에셀은 위대한 승리와 평화의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때로는 감사가 강요처럼 느껴질 만큼 현실이 버겁고,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패배의 에벤에셀'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삶의 왕좌에서 내려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 절망스러운 자리를 승리와 감사의 자리로 탈바꿈시켜 주십니다.

 

지나온 삶의 모든 자리를 돌이켜봅니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지만, 실은 순간마다 손길을 내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난과 시련 역시 마침내 나를 도우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삶의 주권을 다시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고백해 봅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