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시작된 사랑
여호와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피투성이로 죽어가던 아이를 살리셨다. 가장 좋은 것으로 기르시고 마침내 왕후로 삼으셨다. 왕후가 누리는 모든 영광과 권위는 오직 여호와의 헌신적인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여호와의 돌보심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조차 없었던 인생이다.
받은 은혜로 우상을 섬기다
그러나 왕후가 된 예루살렘은 남편 되신 여호와께 받은 모든 것으로 도리어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 입혀주신 옷으로 산당을 꾸미고, 주신 장신구로 우상을 만들고, 주신 기름과 음식으로 우상에게 바쳤다. 심지어 여호와께서 주신 최고의 복인 자녀까지 우상숭배의 제물로 불살랐다. 은혜를 베푼 이에게 갚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배신이다.
신뢰 대신 동맹을 택하다
예루살렘의 배신은 종교적 타락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 정세 속에서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대신 애굽과 앗수르, 바벨론을 더 신뢰했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여호와가 아닌 앗수르에게 스스로 조공을 바치며 항복했고, 다메섹에서 본 이방 제단의 화려함에 매료되어 성전마저 개조했다. 반면 아들 히스기야는 한때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여 앗수르의 대군으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원받았지만, 병 고침의 은혜를 받은 뒤에는 교만하여 바벨론 사신들에게 나라의 보물을 자랑하다가 훗날 포로 될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에스겔은 이러한 예루살렘의 죄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선지자들이 쓰지 않던 극단적인 히브리어 단어 '타즈누트'를 사용한다. 단순한 일회성 잘못이 아니라, 집요하고 노골적인 배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더 나아가 일반적인 창기와도 다르게, 예루살렘은 스스로 값을 치르면서까지 우상과 열강을 좇았다고 에스겔은 고발한다.
은혜를 무기로 돌려받다
여호와의 심판은 냉정하다. 예루살렘이 사랑하고 의지했던 것들, 심지어 미워했던 것들까지 모두 모여 그녀를 대적하게 될 것이다. 받은 장식품은 벗겨지고, 한때 연인이었던 자들이 돌과 칼로 그녀를 심판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들이 칼이 되어 돌아온다.
한나의 기도로 돌아가야 할 이유
우리도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누리며 살아간다. 문제는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느냐이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여호와께 아들을 구하며 서원했고, 응답받은 뒤에는 그 아들을 다시 여호와께 드렸다. "여호와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라는 그녀의 고백이 예루살렘의 배신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여호와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은혜를 우상을 꾸미는 데 쓰고 있지 않은지, 아니면 한나처럼 받은 은혜를 다시 여호와께 드리며 살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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