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핏덩이
에스겔 15장은 예루살렘을 열매 없는 포도나무에 비유했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니 땔감밖에 될 것이 없다는 준엄한 선언이었다. 16장은 이 비유를 한층 더 적나라하게 이어간다.
이야기는 예루살렘의 출생의 비밀에서 시작한다. 조상은 가나안이고,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 어머니는 헷 사람이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다윗이 정복하기 전까지 여부스 족속의 견고한 성읍이었다. 그 뿌리는 여호와의 사역이 아니라 이교도의 역사에 있었다. 그런데도 부모조차 이 아이에게 관심이 없어 내다 버렸다. 탯줄도 자르지 않고, 씻기지도, 소금을 뿌리지도, 강보로 싸지도 않은 채였다. 산파의 기본 조치조차 거부당한 생명이었다.
버려져 피투성이로 발버둥 치는 그 아이를 여호와께서 보시고 말씀하신다. “살아라. 살아라.” 이 한마디가 곧 생명이었다. 죽어야 마땅했던 아이는 그 말씀으로 살아났고,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세우면서 이 버려진 성은 정치와 신앙의 중심지로 자라났다.
프러포즈, 그리고 왕후
들풀처럼 자란 아이는 아름답게 성장했으나 여전히 벌거벗은 채였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옷으로 그 벌거벗음을 덮으시고 언약을 맺으신다. 옷을 덮어주는 행위는 결혼을 청하는 상징적 몸짓이었다. 왕이신 여호와께서 버려진 핏덩이에게 청혼하시고, 왕후의 자리에 앉히신 것이다.
이후 여호와는 화려한 옷과 장신구, 기름진 음식으로 그를 입히고 먹이신다. 아름다움은 그 시대에 왕비의 자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다윗의 시대에 버려진 이방의 아이를 택하여 살리시고,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 그 명성이 온 열방에 퍼졌다. 여기까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였다. 우리 역시 아무 자격 없이 부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권리를 얻은 자들이다.
은혜를 음행으로 갚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받은 은혜를 잊었다. 왕후의 지위와 아름다움을 믿고 지나가는 모든 자와 음행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남용해 우상숭배로 나아가면서, 고결한 신부는 가증한 음녀로 추락했다. 여호와께서 입혀주신 옷으로 산당을 꾸미고, 주신 금은으로 우상을 만들고, 주신 양식으로 그 우상들을 섬겼다.
가장 참혹한 배신은 자녀를 불살라 제물로 삼은 일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의 최고 열매였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그 열매로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을 삼았다. 이는 은유가 아니라 솔로몬, 아하스, 므낫세의 시대에 실제로 반복된 죄였다.
오늘, 우리의 자화상
결국 예루살렘은 더는 여호와의 것이 아니라 음행한 자들의 것이 되었다. 이보다 더 큰 추락이 있을까.
우리도 다르지 않다.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살아라” 선언하셨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생명을 얻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라.”(5) 그런데 그 은혜로 다시 우상을 섬긴다면, 그것이 바로 죄다. 죄는 생명을 사망으로 되돌리는 일이며, 그 값을 치르기 위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다.(6)
지금 우리를 살리신 은혜를 잊고, 오히려 그 은혜로 다른 것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그 물음 앞에 다시 서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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