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참혹한 비극의 중심에는 이스라엘의 깊은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미 두 번이나 성문이 열렸고, 왕족과 귀족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상태였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황폐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도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가 예루살렘과 바벨론 포로지에서 끊임없이 '멸망'을 외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도, 이미 포로로 끌려간 자들도 모두 영적인 착각 속에서 헛된 회복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참상을 겪고도 살아남았다는 지리적 위치를 구원의 근거로 삼아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 확신했고, 포로들을 향해 손가락질했습니다. 반면 포로지의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라는 심판의 세월을 부정하며 곧 예루살렘이 회복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토록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안일한 기대를 가질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첫 번째 메시지는 “예루살렘 성전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선동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으니 하나님이 당신의 집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거라 장담하며, 성전이라는 종교적 껍데기로 자신들의 죄악을 덮으려 했습니다. 두 번째는 “포로 생활이 1, 2년 안에 아주 짧게 끝날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뼈아픈 심판을 '잠시 지나가는 가벼운 징계' 정도로 축소하여 백성들에게서 철저한 회개의 기회를 박탈해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도덕적·영적 타락 속에서도 다가오는 파멸을 외면한 채 오직 “평화다, 평화다, 아무 문제 없다”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에만 달콤한 '불량식품'처럼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입에는 좋지만 몸의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 부를 수 없듯, 죄악에 대해 단호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지워버린 채 무조건적인 축복과 평안만을 남발하는 것은 백성들의 영적 분별력을 마비시키는 행위입니다. 이는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가둬두는 일종의 '영적 가스라이팅'이었습니다. 오늘날 공포와 겁박으로 사람을 조종해 이익을 취하는 사이비 이단들과 본질적으로 궤를 같이합니다.
에스겔은 이들을 향해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루함)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나발) 선지자”라고 일갈합니다. 여기서 어리석음이란 영적으로 극도로 둔감하여 하나님을 부정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본 적이 없으면서, 대중의 심리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방법은 소름 끼치도록 예리하게 보았던 자들입니다.
에스겔은 이들을 두 가지 이미지로 비유합니다. 첫째는 폐허 속에서 밤마다 썩은 고기를 찾아 기생하는 ‘자칼(여우)’이며, 둘째는 무너진 성벽에 겉보기에만 그럴듯하게 눈속임으로 ‘회칠을 하는 자들’입니다. 성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공고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관계가 무너졌다면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무너진 틈을 막아서서 백성들이 회개하도록 성벽을 보수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가짜 선지자들은 거짓말로 회칠을 하며 헛된 소망을 심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폭풍과 대우박을 내려 그 가짜 성벽의 기초를 온 천하에 드러내고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에스겔 13장 후반부에는 사소한 이익을 위해 주술을 부리며 영혼을 사냥하던 여인들도 등장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이나 귀신 수준으로 격하시켰고, 이들의 거짓말 때문에 살아야 할 영혼이 죽고 죽어야 할 영혼이 살아나는 영적 대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슬프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많은 성도가 너무나 쉽게 영적 속임수에 넘어갑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무너진 성벽을 직시하고 회개하기보다는 당장 내 귀를 즐겁게 하는 메시지에 목말라할 때, 우리는 기복주의적 메시지를 은혜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상황에 집착하면 언제든 영적 주술사들의 사냥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기준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때로는 말씀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찌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한다면 기꺼이 순종하는 삶만이 진정한 영적 성벽을 재건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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