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돌아오는 일요일,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교회로 향합니다. 하지만 1~3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이 ‘정기적인 주일 예배’는 엄청난 파격이자, 기독교만의 독특한 정체성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종교들에는 일주일 단위의 예배 개념이 없었습니다. 신들의 탄생일이나 농경 축제 같은 국가 기념일에 맞춰 1년에 몇 번 대규모 축제를 열거나, 개인이 병에 걸리고 재난이 닥쳤을 때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비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전부였죠. 한마디로 “내가 줄 테니 너도 다오(do ut des)”라는 식의 필요에 따른 비정기적 거래였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한 주의 첫날’마다 정기적으로 모였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일요일은 축제일이 아닌 평범한 평일이었습니다. 생업을 이어가야 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에 모여 찬양을 하고, 일과가 끝난 늦은 밤에 다시 모여 음식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로마 관료들의 눈에는 이들이 왜 새벽과 밤마다 비밀스럽게 모이는지 의심스러웠고, 이는 박해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기록들을 보면, 이들의 모임 중심에는 언제나 찬송과 말씀, 그리고 ‘성만찬’이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복음, 성만찬의 진짜 의미
오늘날에도 기독교 예배에서 성찬식은 매우 중요한 성례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성례를 가리켜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형태”라고 했고,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를 인용해 “보이는 말씀(visible word)”이라고 불렀습니다. 귀로 듣는 설교가 말로 선포되는 복음이라면, 성찬식은 온몸으로 참여하고 경험하는 복음인 셈입니다.
성만찬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는 감상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2천 년 전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희생을 ‘지금, 여기’ 나의 사건으로 현재화하는 강력한 은혜의 통로입니다.
또한,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과 승천을 선포하며, 장차 오실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종말론적인 예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현재의 시간 속에서 미리 맛보게 됩니다.
“나를 살핀다”는 것의 오해와 진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이 성찬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던집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것”*이라며, 먼저 자신을 살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많은 성도가 오해를 하곤 합니다. ‘내 마음이 지금 불안하고 죄책감이 드니까, 혹은 삶이 온전치 못하니까 성찬을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성찬을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위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거절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성찬을 거절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찬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부유한 이들은 일찍 와서 자신들이 가져온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취했고, 늦게까지 일하다 온 가난한 노예나 노동자들은 굶주려야 했습니다.
바울이 분노한 지점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교회를 업신여기고, 신분이 낮고 연약한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며, 성찬을 그저 먹고 마시는 세속적인 잔치로 전락시킨 행위. 그것이 바로 주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대입하자면, 성찬을 통해 교회 내에서의 자신의 지위나 권위를 드러내려 하거나, 구원의 감사 외에 다른 사적인 목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완성은 결국 ‘사랑과 배려’입니다
“성만찬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며, 우리 또한 그분의 몸 된 공동체로서 서로를 책임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 항상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살피셨고, 그 어떤 차별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이웃을 향해 사랑과 배려를 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찬이 실패했던 이유는 음식의 양이나 진행 순서 같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배려와 사랑의 부재’였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섬김과 나눔은 사라지고 분열과 차별만 가득하다면, 그 어떤 거룩한 의식도 죄가 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성찬은 어떠한가요? 진정으로 건강한 성도,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라면 교회 안의 연약한 이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배려가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른은 어린이를 먼저 배려하고, 건강한 사람은 병약한 이들을 살피며, 신앙의 연륜이 깊은 이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신자들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양보해야 합니다. 가장 약한 지체가 존중받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떡과 잔을 나누는 이 신비로운 의식은, 결국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가 올바르게 세워져 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번 주일, 성찬의 잔을 대할 때 내 곁에 있는 지체의 손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배려의 시작이 곧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현재화하는 거룩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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