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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제단과 배제의 칼날: 병자호란과 포로귀환이 던지는 신앙적 질문

by 우목수 2026. 5. 27.

 

역사는 거울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비극일지라도,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본성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17세기 조선의 ‘병자호란’과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귀환’은 국가적 권력의 공백과 패전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집단이 어떻게 정체성을 수호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내부적 폭력을 생산하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두 사건은 현대의 신앙인과 사회를 향해 묻는다.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는 명분은 어디까지 정당하며,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이들을 향한 ‘사회적 포용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조선의 병자호란은 사대부들의 성리학적 명분론이 낳은 비극적 종말이었다.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 돌아온 여성(속환녀)들을 향해 조선 사회는 ‘환향녀’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들은 오랑캐에게 정절을 더럽힌 불결한 존재로 매도당했고, 가문과 조정으로부터 이혼을 강요받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국가가 백성을 지키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었음에도, 조선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무능을 은폐하고 성리학적 이념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가차 없이 제물로 삼았다. 여기서 순수성은 생존과 치유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약자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배제의 칼날이었다.

 

이와 유사한 영적·사회적 진통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도 발견된다. 70년의 이역만리 생활 동안 율법과 신앙의 정수를 갈고닦아 돌아온 귀환자들(골라)에게 유다 땅은 ‘더러워진 곳’이었다. 그곳에 남겨져 주변 이방인들과 섞여 살던 본토 잔류민들은 종교적 혼합주의에 물든 배격의 대상이었다. 스룹바벨은 성전 재건에 동참하겠다는 이들의 손길을 단칼에 거절했고, 에스라는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을 공동체의 영적 멸족 위기로 규정하여 아내들과 그 소생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이스라엘 귀환자들의 행동은 얼핏 조선 사대부들의 냉혹함과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앙적 맥락에서 이들의 ‘순수성 추구’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독립된 국가 권력이 없는 페르시아의 변방 소국에 불과했다. 이들이 신앙의 정통성과 정결함을 타협했다면, 유다 공동체는 주변 거대 문화에 흡수되어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념 전쟁이 아니라, 민족의 존폐가 걸린 상황에서 여호와 신앙의 ‘핵심 가치’를 사수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문제는 명분이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순수성’이 권력과 결탁하여 내부의 약자를 향할 때 필연적으로 ‘배제’와 ‘폭력’을 낳는다는 점이다. 에스라의 개혁 과정에서 쫓겨난 이방 아내들과 아이들의 피눈물, 그리고 느헤미야 시절 귀환자 엘리트들에게 토지를 저당 잡히고 자식을 종으로 빼앗겨야 했던 가난한 본토 잔류민들의 신음은 순수성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정절이라는 도그마로 환향녀들을 핍박한 것이나, 유다 엘리트들이 율법이라는 명분으로 본토인들을 경제적·종교적으로 소외시킨 것은 공동체의 연대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과오였다.

 

이 두 역사적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순수성’과 ‘포용성’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요청한다. 신앙과 이념의 순수성은 공동체의 뿌리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다. 기준이 사라진 맹목적 포용은 정체성의 해체를 가져온다. 그러나 반대로 포용성이 결여된 순수성은 괴물이 되어 사람을 잡는다. 진정한 신앙의 순수성은 교리적인 결벽증이나 타인을 향한 정죄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낮고 상처 입은 자들을 품어 안는 ‘포용의 능력’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예루살렘 성전 벽을 높이 쌓아 올리던 느헤미야가 내부의 부당한 고리대금업자들을 향해 분노하며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돌려주라 명했던 가치, 그것이 바로 순수성이 지향해야 할 종착지다. 국가와 공동체는 위기 속에서 규율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그 위기로 인해 상처 입은 지체들을 치유하고 연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 순수성이 제단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힘이라면, 포용성은 그 제단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온 땅의 소외된 자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통로다. 이 둘이 마주 잡을 때 비로소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는 진정한 거룩함을 완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