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터에서의 승리 소식이나 왕자의 탄생을 알리는 환호성은 예로부터 ‘복음(Good News)’이라 불렸습니다. 이 복음은 곧 적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전하는 것이자, 왕국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고 견고해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 예수, 복음의 본질
우리가 믿는 가장 고귀한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입니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복음이며,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 또한 복음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예수님의 탄생,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이 우리 성도들의 새로운 탄생, 죽음, 그리고 부활을 완성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죄로 인해 영원한 죽음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은 죽고,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은 예수 믿는 모든 이의 근본이 됩니다.
2. 복음 전파의 사명과 바울의 삶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마지막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복음을 들은 사람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산 전형적인 모델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자기 생각과 확신을 따라 성도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예루살렘의 첫 순교자였던 스데반을 죽이는 데 가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어 평생을 복음 전파에 바쳤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매 맞고, 갇히고, 도망다녀야 했으며, 이전의 모든 학문, 지위, 명성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지금 차디찬 로마 감옥에 갇혀 손과 발에 쇠사슬이 닿는 섬뜩한 감촉을 느끼고 있습니다.
3. 복음은 공로가 아닌 대체 불가능한 선물
우리의 상식으로는 바울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했다면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대가’를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포기한 것은 결코 공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인 복음 자체가 대체할 수 없는 큰 선물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그 결과로 옛사람의 모습과 풍습을 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보다 못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설물처럼 버리는 것입니다(빌 3:8).
이 관점을 놓치면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기쁨과 감사를 잃을 것입니다. 항상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무기력하며,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해도 허탈하고 허무할 수 있습니다.
마치 손주가 태어난 것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여 평생 피우던 담배를 끊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대가를 요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대가를 요구하는 할아버지는 손주의 귀함을 모르는 것이거나, 손주가 그에게 귀하지 않은 것입니다.
4. 고난 속에서 꽃피는 복음의 진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고통당하는 일들을 오히려 자랑하듯이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갇힘(매임)을 보고 다른 형제들 다수가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갇힘은 실패도 희생도 아니었고, 복음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바울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높이기 위해 복음을 활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빙자하여 명예를 구하고, 재물을 구하고,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기도 했고, 심지어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노력이 허사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해진다면, 그는 결국 가장 귀한 것을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던졌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것이 바울의 진심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오직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그에게 있으니,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모두 유익한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이 세상의 삶에만 소망을 둔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 할 뿐입니다. 구원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악을 행하는 데 거침이 없으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결론: 복음이 장악한 삶의 능력
그리스도의 구원 소식, 즉 복음이 가장 귀하지 않은 이들의 모든 교회 활동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참 복음을 의지하면 가장 강해집니다. 감옥도 이기고,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믿음의 용기를 가집니다. 그래야 미움을 사랑으로 이길 수 있고, 악을 선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고통의 기간을 지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는 고난의 긴 터널과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가장 귀한 것을 놓치지 않을 때 힘차게 감사와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구원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얼마나 이끄는지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되돌아봅시다.
마태복음 21장에서 보듯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면서도 아직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약속과 명령은 저처럼 연약한 사람, 의심하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전해집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전 인격을 장악하도록 기도합시다.
'최근예배자료 > 저서 &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예수 믿으니 정말 좋으신가요?: '나'를 넘어 '우리'가 되는 길 (1) | 2025.12.13 |
|---|---|
| 믿음의 싸움과 구원의 증거: 복음에 합당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길 (1) | 2025.12.07 |
|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비결: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시는 하나님’ (1) | 2025.11.22 |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 무장하라 (0) | 2025.11.14 |
| 섬김으로 이루는 평화: 21세기에도 유효한 그리스도인의 관계 윤리 (1) | 2025.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