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을 위한 권면을 이어갑니다. 이 권면은 남편과 아내, 아비와 자녀의 관계에 이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는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종과 주인의 관계에까지 미칩니다. 역사적으로 노예제도는 19세기(영국 1833년, 미국 1863/1865년)와 20세기(UN 세계 인권 선언 1948년)에 걸쳐 폐지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 혁파와 함께 노비 제도가 폐지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가 단지 과거의 역사만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라지지 않은 현대판 노예의 그림자
국제노동기구(ILO)와 워크 프리(Walk Free) 재단 등의 2021년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약 5천만 명이 현대판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수치입니다. 현대판 노예는 광범위한 착취를 포괄하는 용어로, 강제 노동, 강제 결혼/아동 결혼, 부채 속박, 인신매매 등을 포함하며, 모두 폭력, 강압, 기만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착취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워크 프리 재단이 발표한 2023년 글로벌 노예 지수에 의하면 북한은 10명 중 1명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어 세계 최악으로 평가되지만 (160개국 중 160등), 대한민국 역시 아주 자유롭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 착취, 성 착취 노동자 문제, 그리고 염전 노예 사건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돈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오직 비용 절감에만 집중한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노예를 부리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법적인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현대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파격적인 권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권면을 할 당시, 에베소 교회 주변에는 실제로 노예제도가 존재했습니다. 당시 노예는 법적으로 주인의 사유재산이었고, 전쟁 포로, 고아, 빚 때문에 팔린 사람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노예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비참했으며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심지어 자유인이 되더라도 생존을 위해 경제적 속박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인들은 노예 유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해방 후에도 같은 일을 시키며 의식주 제공 의무를 회피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종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권면합니다 (엡 6:5).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이 드러납니다. 첫째, 바울은 종들을 기도교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으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둘째, 바울은 주인을 '육체의 상전'이라고 정확히 표현합니다. 헬라어 '사륵스(σάρξ)'로 번역된 '육체'는 영혼의 반대 의미로, 심플하게는 '동물의 고기'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상전이 단지 너희 몸만의 주인이며, 참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바울은 종들에게 다른 종들처럼 교활하게 생존하려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엡 6:7).
그리고 사도 바울은 종의 주인들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구하며 명령합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엡 6:9). 주인도 종들을 대할 때 속이지 말고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신분과 조건을 뛰어넘는 사랑
당시 사회적 풍습에서 이보다 더 파격적인 명령은 없었습니다. 노예와 주인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라는 이 명령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종과 주인, 모두의 주인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람을 외모로, 즉 신분이나 조건으로 편파적으로 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 내에서 종과 주인으로 구별되어 살고 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다르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구원은 종과 주인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적용되었으며, 성령께서도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에서 종과 주인을 구분하지 않고 보증하십니다.
따라서 육신의 주인과 육신의 종 사이에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약학자 로버트 뱅크스가 1세기 교회 예배 모습을 그린 책에 따르면, 이 파격적인 명령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로마 시민인 프블리우스가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의 집에서 초대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그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늦게 온 참석자들을 위해 음식을 덜어놓았는데, 그 늦게 온 사람이 바로 종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종과 주인이 식탁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인 아리스도블로가 종인 루시아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는 장면은 프블리우스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종인 루시아가 주인인 아리스도블로로부터 해방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을 때, 주인은 그녀에게 자유인이 되더라도 일과 집과 식량을 동일하게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법적인 해방을 넘어, 노예의 생존권을 착취하지 않고 진정한 인격적 섬김을 실천한 기독교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요한사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요일 4:16).
오늘날 우리는 겁박, 충돌, 전쟁, 속임수로 가득 찬 시대를 살고 있으며, 돈이나 권력으로 사람을 얽매고 착취하여 이익을 구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 셈을 하고 손해보지 않기 위해 계산하며, 사회 속에서는 인격, 사랑, 섬김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미워하고 증오하며 서로를 계산하는 것은 모두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그리고 사회에서의 지위가 높거나 낮은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아래에서 모두 같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계략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섬김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관계 윤리는 신분적 노예가 존재하던 시대에 파격적인 평등을 실현했듯이, 돈이 사람보다 우선시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착취와 증오를 끊어내고 진정한 사랑과 섬김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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