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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로 보는 성도의 행복

by 우목수 2025. 4. 25.

 

 

예수님의 팔복, “복”인가 “행복”인가?

– 마태복음 5장 ‘복’에 대한 고대와 현대의 신학자 해석

"복이 있나니…"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곧 팔복(八福)은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 이어지는 이 선언은 단지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정체성과 복됨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이 ‘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팔복의 의미는 매우 다르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 단어를 '행복'이라고 번역하고, 어떤 이들은 보다 신학적이고 깊이 있는 해석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대 교부들부터 현대 개신교 신학자들까지 ‘복’을 ‘행복’으로 이해한 다양한 해석을 살펴보며, 팔복의 참된 의미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1. 초기 교부들의 해석 –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

초기 교회의 대표적 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팔복을 “beatitudines”, 즉 복됨들이라고 표현하며, 이는 곧 '행복 선언들'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라틴어 beatus를 사용하며, 참된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교부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팔복을 “모든 선한 것이 결핍 없이 존재하는 상태”로 정의하며,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는 길로 팔복을 해석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써만 참된 복, 곧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2. 현대 신학자들의 해석 – “복 있는 자”는 “행복한 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헬라어 μακάριος(마카리오스)를 '행복한 상태'로 해석하며, 고대 그리스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던 문맥을 예로 듭니다. 그는 마카리오스가 “키프로스 섬처럼 외부 도움 없이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팔복은 환경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 주신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역시 “복 있는 자는 진정으로 행복한 자”라며, 세상의 기준으로는 불행하게 보이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에 행복한 자라고 강조합니다.

워렌 위어스비는 복을 “신적 기쁨과 만족”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팔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내면의 기쁨이며, 세상의 조건에 구속되지 않는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3. 한국 신학자의 해석 – “그리스도의 행복론”

서문강 박사는 팔복을 “그리스도의 행복론”으로 부르며, 팔복이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닌 복음으로 인한 행복한 삶의 표현이라고 강조합니다.

김영복 목사는 저서 《예수의 행복론 – 행복에 이르는 길》에서 팔복을 ‘여덟 가지 행복의 길’로 소개하며,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이 복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안내합니다. 그의 해석은 팔복을 행복의 조건이 아닌, 행복의 방향성과 열매로 보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4. 복과 행복의 차이? – 해석의 함정

모든 신학자들이 ‘복’을 ‘행복’으로 그대로 번역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존 스토트는 “팔복을 ‘happy’로 번역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은혜로운 지위와 상태라고 강조합니다.

5. 결론 –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복’이란 단어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행복’과 비슷해 보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훨씬 더 깊고 풍성한 개념입니다. 단지 외적인 성공이나 감정적 만족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내면의 평안과 만족, 그리고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팔복 선언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 핍박받는 자—에게 “너희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현재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위대한 복음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예수님의 이 선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이 복된 삶을 누리는 자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