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때로 어떤 말보다 더 차갑고 무거운 심판이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는 사울 왕이 블레셋 대군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꿈과 우림, 선지자 등 모든 신탁의 통로를 동원했으나 하나님께서 끝내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으셨던 때입니다(삼상 28:6). 그 침묵의 절망 앞에서 사울은 결국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며 영적 추락의 바닥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내가 부르면 무조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대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히 증언합니다. 응답하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도권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에스겔 20장에서도 바벨론 포로지의 장로들이 뜻을 묻고자 에스겔을 찾아오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걸고 맹세하시며 그들의 물음을 거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향해 대화의 문을 닫으시는 이유는 단 하나, 오랜 세월 누적된 이스라엘의 배신 때문이었습니다.
끝없는 배신과 하나님의 거룩한 인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출애굽 이전 애굽의 종살이 시절부터 시작된 배신의 역사를 낱낱이 들추어내십니다.
- 애굽 시절: 가증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명령을 외면했으나,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시려 은혜로 건져내셨습니다.
- 광야 생활: 생명의 규례와 언약의 징표인 안식일을 주셨으나 이를 더럽혔고, 2세대 자손들 역시 조상들의 길을 따라 우상에 장자까지 바치는 죄를 범했습니다.
- 가나안 정착: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산당의 높은 산과 푸른 나무를 찾아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 바벨론 포로지: 나라가 망해 이국땅에 끌려온 순간까지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마음속에 우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참으심'과 '인간의 지독한 배신'이 맞물린 굴레였습니다. 장로들이 입술로는 하나님께 묻겠다고 찾아왔으나 중심에는 우상이 가득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위선적인 질문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제2의 출애굽, 그리고 새로운 언약
하나님께서는 이 포로 공동체를 다시 '광야'로 이끄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을 광야에서 걸러내어 가나안에 들이셨듯, 바벨론이라는 영적 광야를 통해 완악한 자들을 가려내고 남은 자들을 정결하게 빚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은 가슴 벅찬 역전을 보여줍니다. 과거 레위기의 제사에서는 백성이 바치는 '흠 없는 동물의 피와 제물'을 향기로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20장 4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자들을 다시 모으실 때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제물이 향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죄와 단절되어 거룩해진 성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산 제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행위로는 불가능했던 이 회복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피로 맺으신 '새 언약'의 은혜를 통해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침묵의 자리에서 열린 기도의 특권으로
우상에 눈이 멀었던 옛 장로들에게는 질문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는 완전히 다른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목적인 복종만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부르시며 삶의 의문과 고뇌, 답답한 현실을 정직하게 털어놓고 함께 씨름하기를 원하십니다. 닫혔던 기도의 문을 활짝 여시고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약속하십니다.
여전히 답을 알 수 없어 막막한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속의 헛된 우상을 내려놓고, 우리에게 묻고 부르짖을 권리를 선물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과의 정직한 대화 속에서 참된 답을 얻고, 삶 전체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향기를 풍겨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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