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성실교회801 무너진 성벽 틈에서, 하나님은 누구를 찾으시는가 에스겔 22장을 읽다 보면 서늘한 기운이 감돕니다. 2,600여 년 전 멸망을 앞둔 예루살렘을 향한 고발장이, 마치 오늘날 우리의 사회와 교회를 거울로 비추어 쓴 글처럼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귀에 달콤한 평안과 회복을 속삭였지만, 선지자 에스겔은 차갑고 명확하게 파멸의 원인을 짚어냅니다. 병의 원인을 바로 알아야 헛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듯, 심판의 이유를 직면해야 참된 돌이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죄는 ‘사회적 죄’와 ‘종교적 죄’가 얽혀 있었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사회적 죄는 사법적 징벌을 부르고, 우상 숭배와 타락이라는 종교적 죄는 부정함을 낳아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자를 돌보라고 맡기신 권.. 2026. 9. 27. [에스겔 24] 산자를 위한 장송곡 🧭 에스겔 19장은 멸망을 앞둔 유다 왕조를 향한 장송곡입니다. 백성들은 예루살렘과 다윗 왕조를 의지했지만 하나님은 회개 없는 희망을 거부하십니다. 인간의 왕권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연한 가지’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구원과 회복의 소망을 약속하십니다. 2026. 9. 6. 스스로 돌이키고 살아나자 1.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평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당시의 속담을 단호히 폐기하셨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부모의 공로나 권력자의 지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결정됩니다. 의인은 살고 악인은 죽으며, 의인의 자녀라도 악을 행하면 심판을 피할 수 없고, 악인의 자녀라도 의를 행하면 살게 됩니다.당시 예루살렘과 바벨론 포로 공동체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에 갇혀 “여호와의 도가 공평하지 않다”라며 불평했습니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는데 조상과 시대를 잘못 만나 억울하게 고통당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고 죽는 문제가 철저히 개인의 결단과 행위에 달려 있음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악인이 돌이켜 의를 .. 2026. 8. 30. 내 탓인가, 조상 탓인가: 에스겔 18장이 전하는 개인의 책임과 구원 살다 보면 일이 꼬이고 고난이 겹칠 때 불쑥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혹시 우리 집안 내력 때문에 이런 불행을 겪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나 과거의 배경에서 찾으려는 태도는 인간의 아주 오래된 본능 중 하나입니다.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축을 남긴 사울 왕 역시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려고 남겨둔 것"이라며 백성 탓을 했습니다.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씻을 수 없는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마주했을 때, 그는 핑계를 대지 않고 즉시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었다.. 2026. 8. 23. 배신의 땅에 심긴 소망의 가지 말을 참 재치 있고 유쾌하게 잘하는 한 유명 방송인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청중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인데,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중학교 강당에서 열린 강연이었는데, 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무관심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이야기라도 들을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지루한 잔소리로 들릴 뿐이었던 것이죠. 어떻게든 학생들의 마음을 열어보려 애쓰는 강연자의 모습이 왠지 짠하게 다가왔습니다. 성경 속 예언자들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은 내 귀를 즐겁게 해주고, 당장의 위로와 성공을 보장하는 말에는 귀를 쫑긋 세웁니다. 하지만 회개와 책망,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목소리에는 철저히 귀를 닫아버립니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2026. 8. 16. 그러나 내가 기억할 것이다. 에스겔 16장은 우리를 깊은 성찰로 이끄는 거울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라는 옛 속담을 빌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숨겨진 가계도를 낱낱이 파헤치십니다. 스스로 거룩한 도시라 자부하던 예루살렘의 뿌리가 사실은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에 불과하며, 그 자매는 타락의 대명사인 사마리아와 소돔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고 매일 제사가 드려지는 자신들이 소돔이나 사마리아와는 차원이 다른 '선민'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소돔의 본질적인 죄는 풍족함 속에서 가난하고 무력한 이웃을 외면한 교만함이었고, 사마리아의 악행조차 예루살렘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종교적 형식주의 뒤에 숨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예루살렘은, 자매들보다 더욱 .. 2026. 8. 9. [에스겔 19] 여호와의 질투를 일으킨 죄 🧭 버려진 아이를 왕후로 삼아 사랑하신 여호와께, 예루살렘은 그 은혜로 우상을 섬기고 앗수르·애굽·바벨론을 더 의지하며 배신했다.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역사가 그 실상을 증언한다. 에스겔은 '타즈누트'라는 유일무이한 극단적 언어로 이 배신을 고발하며 벌거벗겨질 심판을 경고하고, 한나의 기도처럼 받은 은혜에 감사로 답하며 다시 신뢰하는 삶을 살라고 촉구한다. 2026. 8. 2. [에스겔 18] 가증한 예루살렘의 우상숭배 버려져 죽어가던 예루살렘을 여호와께서 살리시고 왕후로 삼으셨으나, 그는 받은 은혜를 잊고 우상숭배와 자녀 제사로 배신했다. 은혜로 생명을 얻고도 다시 은혜로 우상을 섬기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범죄이다. 2026. 7. 26. [감사] 에벤에셀의 은혜 자기 뜻대로 살다 패배했던 이스라엘은 미스바에서 우상을 버리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회개의 자리에 승리를 주셨고, 이로써 참패의 자리는 도우심의 은혜를 기억하는 ‘에벤에셀’로 바뀌었습니다. 2026. 7. 12. 패배의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 에벤에셀의 은혜 일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다 보면 문득 마음 한구석이 허허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 노력을 다했음에도 찾아오는 실패의 좌절감은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극심한 영적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시대를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나라를 이끌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거부했던 '영적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기준을 버리고 각자의 이익과 판단만을 좇아 살아가던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영적 타락과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뿐이었습니다. 블레셋과.. 2026. 7. 12. 개인의 구원에 관하여 1. 예루살렘의 멸망과 우상숭배라는 본질적 비극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바라보실 때 가장 미워하시는 행위는 성경이 일관되게 고발하듯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은 인류의 가장 대표적인 죄로 우상숭배를 꼽으며, 우리가 짓는 대부분의 죄 역시 이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증언합니다. 과거 에스겔 선지자에게 멸망할 예루살렘의 영적 실상을 보여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하나님의 집'이라 자랑하며 거주 자체로 구원을 확신하던 예루살렘이 구석구석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폭로하셨습니다. 백성들은 도리어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투정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먼저 당신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에 그곳에 머무실 수 없어 영광을 거두고 떠나신 것입니다. 결국 에스겔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2026. 7. 5. [에스겔 ] 가짜 조심 🧭 하나님의 공의와 철저한 회개가 빠진 채 청중의 귀만 즐겁게 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경계하고, 무너진 영적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을 신앙의 참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2026. 6. 28. 이전 1 2 3 4 ··· 6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