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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예배자료/저서 & 글모음104

마침내, 그날 (에스겔 24:1-27) 기억에 남지 않는 평범한 날이 있는가 하면, 온 세상이 영원히 기억하는 날도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처럼, 어떤 날짜는 그 자체로 뼈아픈 역사가 됩니다.기원전 588년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오늘의 날짜를 똑똑히 기록해 두라고 명하셨습니다. 바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침공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1. 안전의 상징이 심판의 터로: 녹슨 가마솥 비유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가마솥을 걸고 좋은 고기와 뼈를 넣어 푹 삶으라는 비유를 전하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잔치나 제사를 기대했겠지만, 하나님의 선언은 준엄했습니다."화 있을진저 피를 흘린 성읍, 녹이 벗겨지지 아니한 가마솥이여"과거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이 성읍은 가마솥이고 우리는 .. 2026. 10. 11.
빙산 앞의 타이타닉, 그리고 무너진 두 자매 이야기 — 에스겔 23장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1912년 4월 14일 밤, 북대서양을 항해하던 타이타닉호 무전실에는 빙산이 떠다닌다는 경고가 무려 여섯 차례나 쏟아졌습니다. 인근 캘리포니안호의 무전사가 얼음에 둘러싸여 멈춰 섰다고 마지막 경고를 보냈을 때, 타이타닉의 무전사 잭 필립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습니다."조용히 해! 나 지금 바빠! 승객들 전보 처리 중이란 말야."필립스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앞의 잡무에 지나치게 성실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릴 결정적인 경고를 한낱 '전파 방해'로 치부한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불과 40분 뒤 타이타닉은 빙산과 충돌했고, 1,500명이 넘는 생명과 함께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습니다.만약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장면을 바로 곁에서 지.. 2026. 10. 4.
무너진 성벽 틈에서, 하나님은 누구를 찾으시는가 에스겔 22장을 읽다 보면 서늘한 기운이 감돕니다. 2,600여 년 전 멸망을 앞둔 예루살렘을 향한 고발장이, 마치 오늘날 우리의 사회와 교회를 거울로 비추어 쓴 글처럼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귀에 달콤한 평안과 회복을 속삭였지만, 선지자 에스겔은 차갑고 명확하게 파멸의 원인을 짚어냅니다. 병의 원인을 바로 알아야 헛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듯, 심판의 이유를 직면해야 참된 돌이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죄는 ‘사회적 죄’와 ‘종교적 죄’가 얽혀 있었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사회적 죄는 사법적 징벌을 부르고, 우상 숭배와 타락이라는 종교적 죄는 부정함을 낳아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자를 돌보라고 맡기신 권.. 2026. 9. 27.
언약지기, 아브라함 📖구입처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6497278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197776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21281576영풍문고 https://www.ypbooks.co.kr/books/202609145770579340 🌻책소개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약속의 땅으로, 그 땅에서 견뎌내어 마침내 이루어진 언약안에서 산 아브라함, 그리고 그 언약은 마침내 이삭에게로세상은 지금도 우리에게 현대의 우르를 보여 준다. 그곳에는 성공과 재물, 권력과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길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져 있다. 우리는 .. 2026. 9. 26.
심판의 칼 끝에서 만나는 하나님(에스겔 20:45–21:32)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내가 필요할 때마다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분’으로만 축소하곤 합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가 마주한 하나님은 거룩한 공의의 칼을 빼어 드신 분이었습니다.에스겔 20장 45절부터 21장 전체에는 네 편의 ‘칼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이 노래들은 각각 독립된 시기에 선포되었으나, ‘심판의 도구인 여호와의 칼’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당시 거짓된 평안과 헛된 구원관에 사로잡혀 있던 유다 백성들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비통한 외침이었습니다. 네 편의 칼의 노래를 통해 본문이 전하는 메시지를 함께 묵상해 봅니다.1. 칼의 수수께끼: 꺼지지 않는 불과 멈추지 않는 심판 (겔 20:45–21:7)첫 번째 노래는 남쪽 숲에 내리는 꺼지지 않는 불의 비유로 시작됩니다. 남방.. 2026. 9. 20.
배신의 역사와 새언약 침묵은 때로 어떤 말보다 더 차갑고 무거운 심판이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는 사울 왕이 블레셋 대군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꿈과 우림, 선지자 등 모든 신탁의 통로를 동원했으나 하나님께서 끝내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으셨던 때입니다(삼상 28:6). 그 침묵의 절망 앞에서 사울은 결국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며 영적 추락의 바닥을 보여줍니다.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내가 부르면 무조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대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히 증언합니다. 응답하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도권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에스겔 20장에서도 바벨론 포로지의 장로들이 뜻을 묻고자 에스겔을 찾아오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걸고 맹세하시며 .. 2026. 9. 13.
아직 살아있는 왕을 위한 장송곡? 에스겔 19장이 주는 뼈아픈 반전 1. 서론: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 2002년의 기억대한민국 국민에게 2002년은 뜨거운 영광의 정점이었지만, 그 이전의 한국 축구사는 사실 끈질긴 '희망 고문'의 연속이었습니다. 1954년부터 본선 무대를 밟았음에도 무려 12번의 도전 동안 16강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던 시절, 우리를 지탱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경우의 수'라는 마법의 계산법이었습니다. "A팀이 B팀을 이기고, 우리가 몇 골 차로 이기기만 한다면…." 4년마다 반복되는 이 계산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헛된 낙관에 매달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희망이기도 했습니다.당시 예루살렘의 심리 상태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바벨론에 두 번이나 침공당해 엘리트와 기술자들이 포로로 끌려간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경우의 수'를 굴렸습.. 2026. 9. 6.
스스로 돌이키고 살아나자 1.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평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당시의 속담을 단호히 폐기하셨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부모의 공로나 권력자의 지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결정됩니다. 의인은 살고 악인은 죽으며, 의인의 자녀라도 악을 행하면 심판을 피할 수 없고, 악인의 자녀라도 의를 행하면 살게 됩니다.당시 예루살렘과 바벨론 포로 공동체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에 갇혀 “여호와의 도가 공평하지 않다”라며 불평했습니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는데 조상과 시대를 잘못 만나 억울하게 고통당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고 죽는 문제가 철저히 개인의 결단과 행위에 달려 있음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악인이 돌이켜 의를 .. 2026. 8. 30.
내 탓인가, 조상 탓인가: 에스겔 18장이 전하는 개인의 책임과 구원 살다 보면 일이 꼬이고 고난이 겹칠 때 불쑥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혹시 우리 집안 내력 때문에 이런 불행을 겪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나 과거의 배경에서 찾으려는 태도는 인간의 아주 오래된 본능 중 하나입니다.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축을 남긴 사울 왕 역시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려고 남겨둔 것"이라며 백성 탓을 했습니다.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씻을 수 없는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마주했을 때, 그는 핑계를 대지 않고 즉시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었다.. 2026. 8. 23.
배신의 땅에 심긴 소망의 가지 말을 참 재치 있고 유쾌하게 잘하는 한 유명 방송인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청중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인데,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중학교 강당에서 열린 강연이었는데, 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무관심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이야기라도 들을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지루한 잔소리로 들릴 뿐이었던 것이죠. 어떻게든 학생들의 마음을 열어보려 애쓰는 강연자의 모습이 왠지 짠하게 다가왔습니다. 성경 속 예언자들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은 내 귀를 즐겁게 해주고, 당장의 위로와 성공을 보장하는 말에는 귀를 쫑긋 세웁니다. 하지만 회개와 책망,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목소리에는 철저히 귀를 닫아버립니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2026. 8. 16.
그러나 내가 기억할 것이다. 에스겔 16장은 우리를 깊은 성찰로 이끄는 거울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라는 옛 속담을 빌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숨겨진 가계도를 낱낱이 파헤치십니다. 스스로 거룩한 도시라 자부하던 예루살렘의 뿌리가 사실은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에 불과하며, 그 자매는 타락의 대명사인 사마리아와 소돔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고 매일 제사가 드려지는 자신들이 소돔이나 사마리아와는 차원이 다른 '선민'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소돔의 본질적인 죄는 풍족함 속에서 가난하고 무력한 이웃을 외면한 교만함이었고, 사마리아의 악행조차 예루살렘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종교적 형식주의 뒤에 숨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예루살렘은, 자매들보다 더욱 .. 2026. 8. 9.
여호와의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예루살렘 은혜로 시작된 사랑여호와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피투성이로 죽어가던 아이를 살리셨다. 가장 좋은 것으로 기르시고 마침내 왕후로 삼으셨다. 왕후가 누리는 모든 영광과 권위는 오직 여호와의 헌신적인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여호와의 돌보심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조차 없었던 인생이다. 받은 은혜로 우상을 섬기다그러나 왕후가 된 예루살렘은 남편 되신 여호와께 받은 모든 것으로 도리어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 입혀주신 옷으로 산당을 꾸미고, 주신 장신구로 우상을 만들고, 주신 기름과 음식으로 우상에게 바쳤다. 심지어 여호와께서 주신 최고의 복인 자녀까지 우상숭배의 제물로 불살랐다. 은혜를 베푼 이에게 갚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배신이다. 신뢰 대신 동맹을 택하다예루살렘의 배신은 종교적 타락에 그치지 않는다. 국.. 2026.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