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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공과 자료/복음서

마가21. 멀지 않은 하나님 나라

by 우목수 2019. 12. 8.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더러움은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첫 열매 되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고 부활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요약설교문......

 

 

예수님께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비유로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포도원의 비유입니다. 잘 가꾼 포도원을 세를 놓고 떠난 주인과 포도원 맡은 자들, 그리고 주인이 보낸 종, 그리고 아들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다시 설명하실 필요가 없을 만큼 제자들도, 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그 의미를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이 비유가 자신들을 빗대어 책망하신 것을 알아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고 싶었지만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분노하며 떠나 무엇을 책잡아 예수님을 잡아 가둘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구실이 될 답을 듣기 위해 여러 가지를 질문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먼저 나섰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는 단지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을 옳으냐를 묻는 것 같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다양한 종교적 정치적 문제가 걸려 있는 난해한 질문입니다.

로마의 속국인 유대인들에게 세금 자체로도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돈에 새겨진 로마 황제를 칭송하고 신성시 하는 내용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죄악의 상징과 우상숭배의 전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에서도 아예 사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바치라는 말은 종교적으로, 세금을 바치지 말라는 말은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언이 됩니다. 그런데 데나리온을 가져오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거기 새겨진 형상과 글이 가이사의 것인 것을 들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비치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세금의 문제를 넘어서 세상의 것에 매이지 말고 더럽고 타락한 세상의 것은 모두 그들을 향하게 내버려두고, 하나님께로 향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가이사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죄와 더불어 취할 수 있는 이득에 눈이 멀었습니다. 심지어 기도하며 그것을 구하기도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가이사의 것에 눈독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버리듯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입니다. 그들의 질문은 부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혼인 풍습이었던 계대혼에 관한 것입니다. 형이 자식이 없이 죽게 되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대를 잇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했지만 상속자가 없이 죽었고, 동생이 형수를 취했지만 또 상속자를 얻지 못하고 죽었고,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죽었다면 부활의 때에 일곱 형제와 아내가 만날텐데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시며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대를 잇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이 법은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38:11), 더욱이 일곱 형제가 한 여인과 결혼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현실성 없는 가설을 만든 것은 단지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어리석은 질문에 불과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경우 첫 번째 남편의 아내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두개인들은 부활 자체를 부정하는 부류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부활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단지 죽은 사람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부활이나 영생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고통스럽고 힘든 육신을 그대로 갖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이 되니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천사와 같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부활을 씨를 뿌린 것으로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씨를 뿌리면 그 씨가 죽어 새싹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이런 것입니다. 썩을 몸을 심지만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비천한 몸을 심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을 심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이 땅에 속한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썩어질 유체나 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약속된 부활은 지금 우리가 죽는 상태에서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어리석고 쓸데없는 질문 후에 한 시기관(율법학자)이 예수님께 계명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최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에 서기관이 예수님의 말씀이 옳고, 이것이 모든 제사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대답합니다.

이 고백은 들은 예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다고 칭찬하셨습니다. 화려한데 생명이 없는 제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는 믿음과 실제 삶에서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실천이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고, 그와 동일한 부활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들의 삶은 가이사의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제사의 의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